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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남월국왕묘南越國王墓, 서한의 유물과 서한시대 유물은 다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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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 남월국南越國 문물 답사는 나한테는 여러 가지를 일깨운 기회였다.

남월국은 그 태동 시기, 태동 주체, 멸망 시점이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다.


남월국 창건주 조타는 산동성 출신으로 남월국에서 독립해 남월국을 세웠다. 현지 민족과의 복합세력이 구축한 왕조로 100년간 지속하다가 기원전 111년인가 한 무제에게 멸망당하고 그 땅에는 7군이 설치되었다.

위만조선 역시 이와 판박이라, 아마도 북경 일대 출신일 가능성이 많은 위만이 기자조선으로 망명해 처음에는 그 서쪽 방 100리를 분봉받았다가 이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위만조선을 열었으니, 그러다가 역시 100년만에 한 무제에게 망하고는 그 땅에 4군이 설치되었다.


남월국을 정벌한 장수가 그대로 위만조선 정벌군 상층부를 형성했으니, 이러고도 남월국과 위만조선은 쌍둥이라 하지 않겠는가?

남월국 문제 무덤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현지에서는 그 전시관이 건립되어 있으니, 그 문패에는 '서한남월왕묘박물관西漢南越王墓博物館'이라 달았다.


빌어먹을 남월왕묘면 남월왕묘지 서한남월왕은 또 무슨 개뼉다귀인가?

내가 이에서 격발한 바는, 사진으로 첨부하듯이 남월국 왕묘는 온통 중국풍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동시대 서한풍西漢風이다.


저 금루옥의金縷玉衣만 해도 서한 전통이요, 옥벽을 비롯한 각종 옥제품은 틀림없이 중원에서 수입한 것들이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내가 이에서 새삼 배운 것은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유적 유물과 서한시대의 유적유물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한시대 중심부, 예컨대 낙양이나 서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유물 건물지가 나온다 해서 그것이 곧 서한시대의 유적 유물이라는 증거는 결코 아니다. 이걸 구별하는 방법을 나는 새삼 배웠다.

저것은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남월국이라는 왕조가 소화한 유물 유적인 것이다.


이는 공주 무령왕릉이나 송산리 6호분도 똑같다.
그것이 동시대 중국을 그대로 따온 무덤 양식이라 해서 그것을 우리는 양조 무덤이라 하지 않는다. 백제 무덤이다.

양조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 유물과 그것이 양조 유물 유적이라는 말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이 점 위만조선 혹은 낙랑군 유적·유물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하다. 다만 국내 이 업계에선 저 둘을 혼동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 이 글은 2017. 6. 21 내 페이스북 포스팅이며 관련 무수한 글을 나는 십여년 전부터 이곳저곳에 싸질렀다. 근자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글이 몇편 보이므로 적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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