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당쟁4 택리지, 죽임이 일상화한 당장 시대가 갈구한 유토피아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언설이 이른바 당파성론이다. 흔히 말하기를 식민권력에 복무한 일본 관학 역사학이 이런 논리를 구조화했다 하며, 그것을 정체성론 타율성론과 더불어 식민사학을 규정하는 삼대 악의 축으로 대서특필한다. 맞는가?당파 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은 저들이 새삼스럽게 개발한 것도 아니요, 무엇보다 조선시대 당쟁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이런 인식은 구한말 그리고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이나 다른 계열 역사학 문화사에서 광범위했으니, 조선이 망한 이유 중에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저 당파성론이 당당히 올라 있다. 함에도 왜 이런 사실은 도외시한 채 모든 책임을 일제에 덮어씌우는가? 편하기 때문이다. 전가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가 면피가 되는 까.. 2025. 1. 18. 당쟁의 반복을 경계한다 뭐 예민한 시기라 간단하게 쓴다. 현재 우리나라 정국을 보면조선시대 당쟁의 전개양상과 매우 닮아 있다. 우리 선입견으로는 당쟁이라는 것이 밑도끝도 없는 모함과 억지, 공리공론으로 전개되었을 것 같지만실제로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당쟁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예송을 보자. 예송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 경전에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상대에 대한 반박은 모두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이루어졌다. 매우 정밀하며 문헌에 대해 낱낱이 고찰하고 관련 근거를 섭렵하여 탐색하며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예송이 왜 일어났는가. 그 문헌적 근거가 된 원전이라는 것 자체가모호하기 짝이 없이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태생적 모호함의 토대에 당파적 이해가 결합하면그 자체 몇백 년에 걸친 당쟁으로 이어지며마지막은 .. 2024. 12. 28. 흑산도까지 침투한 네편 내편 편가르기 1779년 4월 29일 당쟁이라는 것이 있은 이래, 그 악영향이 견고하고 만연하기로 들자면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시비를 가리는 데서 출발하여 충신과 역적을 나누는 것으로 끝나고, 끝이 났다가는 다시 시작하여 지엽말단적인 것을 층층이 첩첩이 쌓아가니 결국에는 반드시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르러서야 그만두게 될 것이다. 명나라 말기에 당쟁의 폐해가 심각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786년 1월 16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이른바 당파의 구분이란 것은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비록 한 나라에 함께 살고 한 군주를 함께 섬기고 심지어 한 마을에 함께 살고 있지만 아득히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전혀 소식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당파의 사람이 쓴 글을 얻.. 2020. 4. 15. 영조시대 군인한테 비친 당쟁의 폐해 조선 영조시대에 군인으로 출세한 인물로 구수훈具樹勳(1685~1757년)이라는 이가 있으니 무관이라, 무인은 까막눈이 많지만, 그는 문장에 능했다는 장점이 있어 《이순록二旬錄》이라는 책을 남길 정도였다. 본관 능성綾城인 그는 영조 8년(1732)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고, 그 3년 뒤인 영조 11년(1735)에는 통제사로 승진했다. 13년(1737)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17년(1741) 대간이 탄핵함으로써 삭직되었지만 19년(1743) 경기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27년(1751)에는 수원부사가 되었지만, 마침 찾아든 대흉년에 기민은 구제하지 않고는 군정軍丁을 뽑으면서 뇌물을 받았다 해서 탄핵을 받고는 다시 파직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다시 빨딱 일어섰으니 29년(1753) 좌포도대장에 임.. 2020. 4. 14.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