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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4

동학농민혁명은 더 인수분해 해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인수분해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수학 식이다. 더 분해할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을 필자가 생각하는 바 적어보기로 한다. 동학농민혁명 주체는 "농민"으로 퉁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심지어는 진사 급제자들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고 사류 중에도 상당히 가담한 자가 많아 "농민혁명"으로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농민 반란의 성격과 함께 일본으로 치자면 하급 무사에 의한 메이지유신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는 전쟁이라 이 둘을 뭉뚱그려 놓고 농민전쟁 혹은 농민혁명으로 불러 버리고 끝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역시 혁명의 주도 세력은 하급 무사들이었는데 이 하급무사라.. 2024. 11. 9.
[막말인물전-10] 동학"농민"전쟁이라는 분석의 난폭함 앞에서 필자는 동학운동이 메이지유신과 상응하는 움직임이라 했지만 물론 근세의 발전 정도에 있어 일본과 조선은 그 차이는 크지 않다해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혁명의 방향성을 가지고 식자층에 의해 지도된 메이지유신과 "농민전쟁"이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정의를 달고 기술된 동학운동을그대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먼저 지적해야 할 부분은동학"농민"전쟁, 그리고 이 전쟁의 주체가 "농민"이라는 분석의 난폭함이다."농민전쟁"이라면 도대체 이것이 근대적 혁명인지 아닌지도 모호하고중세에 있었던 수많은 농민전쟁들과 어떻게 다른지도 애매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전국시대에 소위 말하는 잇키[一揆, いっき]가 있는데, 이것이 농민전쟁에 아주 가까운 개념이라.. 2024. 7. 22.
Archives of April 19 Revolution a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Newly Inscribed on Memory of World The 216th session of the Executive Board of UNESCO, meeting in Paris from May 10 to 24, made the final decision on May 18 to inscribe the “Archives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the “Archive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n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The Archives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the Archive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re considered the documentary her.. 2023. 5. 19.
동학농민전쟁의 '농민'은 참으로 모호한 개념 당시 향촌에는 잔반, 향리, 전호, 노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계층이 다른 지적수준을 가지고 존재했다. 이들 모두를 "농민"이라고 뭉떵그려 불러버리면 19세기 후반 상황에 대한 분석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실제로 동학군에는 양반계급도 상당히 많이 합류 해있었고 잔반은 부지기수였다.) 개인적으로는 19세기 후반, 소위 중인, 잔반, 향리, 그리고 상층 노비, 부유한 상인 중 국제정세에 밝고 한국사회의 침로에 대해 명확한 방향의식을 지닌 이들이 왕조 멸망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보는데 실제로 바로 이 계층이 메이지 유신처럼 조선왕조 타도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발빠르게 국제정세에 대처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앙샹레짐의 타도가 이미..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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