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은 인수분해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수학 식이다.
더 분해할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을 필자가 생각하는 바 적어보기로 한다.
동학농민혁명 주체는 "농민"으로 퉁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심지어는 진사 급제자들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고
사류 중에도 상당히 가담한 자가 많아 "농민혁명"으로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농민 반란의 성격과 함께
일본으로 치자면 하급 무사에 의한 메이지유신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는 전쟁이라
이 둘을 뭉뚱그려 놓고 농민전쟁 혹은 농민혁명으로 불러 버리고 끝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역시 혁명의 주도 세력은 하급 무사들이었는데
이 하급무사라는 것이 우리로 치면 딱 조선후기의 잔반 내지는 호농 정도의 수준이라
따지고 보면 메이지유신과 동학혁명은 그 혁명의 주도자들의 성격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동학혁명은 남아 있는 인수분해를 더 진행해야 한다.
한 가지 마지막으로 쓰자면,
동학혁명의 주체는
당시 조선이 일본 정도로만 나라 밖 사정과 사상적 동향만 제대로 알고 있었어도
무속적 분위기 물씬한 동학으로 무장하고 나왔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아마 조선이 에도 시대 정도의 난학이 조선 후기에 발달해 있었다면
동학혁명은 아마 메이지유신처럼 전개되었을 것이다.
메이지유신을 농민혁명 혹은 농민 전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동학혁명을 농민혁명으로 규정하고 더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필자가 보기엔 이 혁명을 해방전후사의 정치적 이슈와 연결시켜 한국학계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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