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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리국6

쓰레기통에서 구출한 천마총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직전 극적으로 구출되어 버스를 기다리는 《천마총》. 크고 무구바서 가방에 안 드간다. 노약자석에 앉히려 했더니 천마총은 경로우대정이 없단다. 올게 나이 천사백인데. (2016. 10. 4) *** 저 보고서가 어찌하여 우리 공장 자료실서 폐기처분되려다가 내 눈에 띄어 극적으로 구출되어 살아남았다. 물론 헌책방으로 가서 새 주인을 찾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같은 새주인 만났으니 다행이지 않겠는가? 2023. 6. 3.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6) 철권통치자 이종철 그는 차우세스쿠였다. 그가 가는 곳엔 어김없이 절대왕정이 들어섰다. 그의 치하 국립민속박물관은 그의 말 한마디에 웃고, 말 한마디에 떠는 절대 왕국이었다. 공公이 곧 사私요, 사가 곧 공이었기에 시도때도 없이 쉬는 직원들을 불러냈다.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장인 천진기 역시 툭하면 주말에 호출을 받아 불려나갔다. 주말이면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는 이 철권통치자를 따라 조직 개편의 키를 쥔 행정자치부나 예산 편성을 주무르는 재정경제부 담당 사무관이나 국장 집을 찾아가서는 하염없이 문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후문에는 맘에 안 드는 직원들에게는 ‘조인트’도 깠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자기가 많은 기관이나 부서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직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 정성과 노력에는 혀를 내둘러 반란은 .. 2023. 3. 14.
이태리 연수갔다 옥스퍼드대 고고학 박사로 나타난 김병모 선생도 이젠 팔순을 앞에 두고 있다. 서울중고 1953 입학동기가 400명인데 150명 죽고 250명 남았단 말을 한다. 십년전부터 친구들 부고가 정신없이 날아든단다. 한국문화재엔 유홍준이 있기전에 김병모가 있었다. 1978년 옥스퍼드대 박사학위를 들고 나타난 그를 창산 김정기가 다시 불렀다.관리국 상근전문위원으로 가니 7년만의 친정복귀였다. 한국일보 강대형 기자가 옥스퍼드대 고고학 박사가 나타났다고 기사를 썼다. 직후 김병모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한양대 재단이었다. 김연준(1914~2008) 이사장을 면담한지 두 시간. 김연준은 교무처장을 부르곤 그 자리서 김병모를 사학과 교수로 발령냈다. 하지만 그의 한양대 취임은 이듬해 2월로 늦춰진다. 그 이유를 선생은 "상근위원 계약기간 때문이었다"고 한다. .. 2022. 12. 7.
불과 같았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 September 19, 2017 작성한 글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뇐네 설득한다 좀 애를 먹었다. 문화재청에 섭섭함이 많은 듯 격정을 토로한다. 1937년생이니 올해 여든하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1964년 4월 행정주사보로 문화재관리국에 발을 디뎠다. 1999년 6월 국립도서관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력이 독특해 행정직으로 입사했다 학예직으로 전직하고 다시 이내 행정직으로 돌아왔다. 정재훈 국장과 더불어 한국문화재 행정의 초석을 다진 일등공신이다. 한사코 옛날 이야기 들어 뭐하냐 거부한 그였지만 강남역 주류성에서 만나자마자 필설을 토한다. 1966년 구자춘 제주도지사에 맞서 온 산이 표고버섯 농장을 변하기 직전 한라산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켜낸 일, 춘천 중도로 떠나려던 문화재연.. 2019. 9. 20.
문화재위원 박양우 8일 개각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 두번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박양우 전 문체부 차관이 지명되었다. 초대 도종환 장관은 현직 재선 국회의원이라, 오래 재직한 편인 데다, 차기 총선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라, 이번 개각 대상에 포함될 것이 확실했으니, 그러는 와중에 후임으로는 박 후보자와 더불어 또 다른 정치인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내가 아는 한, 박 후보자는 개각 하마평 초창기에 가장 유력한 대안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마침 그때 제1차관이 역시 문체부 출신인 김용삼 차관으로 교체된 직후라, 그리 되면 장관, 제1·2차관까지 모조리 문체부 출신인 점이 한계라는 말이 나온 데다, 정치역학 구도상 우상호 의원이 강력한 대안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닌가 했더랬다. 대략 1주일 .. 2019. 3. 8.
김삼대자(金三代子), 목가구에 온몸을 던지다 녹취와 메모를 풀어야겠지만 기억에 의존해 우선 정리한다. 문화재관리국 초창기 역사에서 흔치 않은 여성 전문 학예직인 김삼대자(金三代子) 선생을 오늘 마포 상수역 인근 자택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고 인근 음식점으로 옮겨가며 세 시간가량 인터뷰했다. 이상하게도 나랑은 직접 인연이 거의 없으나 명성은 익히 들었으니, 같은 직장 후배였던 정계옥 선생이 선생과 친한 데다 마침 홍익대를 사이에 두고 그 정문과 후문에 사는 까닭에 정 선생을 통해 인터뷰 주선을 부탁해서 성사한 자리였다. 1943년 양력 1월, 음력으론 전해 12월, 뜻밖에도 중국 북경北京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 1월 귀국했다. 주민등록엔 양력으로 올랐단다. 1919년생인 선친은 삼청동을 근거지로 하는 갑부 집안 자식이었던 듯, 고등학교를 이미 일본서 .. 2019.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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