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원6 주마간산 서원 간평 내가 다녀본 서원 중에 주변 풍광과 건물배치가 압도하기로는 소수서원을 꼽을지니 이유는 이곳이 원래는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대찰의 풍모를 답습했다. 광산 월봉서원은 이십세기 복원이지만 그로 향하는 골목길이 임푸레씨브하다. 병산서원은 보니 만대루 하나가 모든 걸 커버한다. 기타 서원도 나름 특장이 있다. (2014. 5. 24) 2023. 5. 24. 용인특례시, 심곡서원에서 조선시대 연못터 발견 - 심곡서원 6차 발굴조사…서원 내 유식시설에 대한 고증 자료 확보 의의 - 용인특례시가 문화재청과 추진한 수지구 상현동 심곡서원 6차 발굴조사 결과 연못터와 도수로 등 조선시대 서원 내 유식시설(유생들의 휴식공간) 유적을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1605년 건립된 심곡서원(사적 제530호)은 조선시대 사림의 상징적 인물인 정암 조광조(1482~1519)의 신위를 봉안한 곳이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손되거나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시는 지난해 ‘심곡서원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했다. 또 심곡서원의 원형을 복원하고 보존·활용에 대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꾸준히 발굴조사를 벌여왔다. 이번 6차 발굴조사는 앞서 지난 2020년 5차 발굴조사에서 장서각.. 2022. 8. 24. 보수중인 노강서원 (2018.08.15.) 해질 무렵 늦게 도착한 노강서원은 보수 중이었습니다. 현장을 지키는 아저씨 말씀으로는 2년~3년은 걸릴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친절하셨던 현장 관리인) 그렇구나… 왜 보수하는지, 어디를 하는지 여쭤 보려다 말았습니다. 보수하는 관계로 서원 안쪽은 세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겉에서라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온 김에 인근 윤증고택, 종학당에 들를까 하다 천안으로 돌아가면 너무 늦어 질 것 같아 저도 철수 했습니다. 저번 가봤으니, 오늘은 패스 하는 걸로! 보수 끝나면 다시 한 번 들어야 겠습니다. 노강서원 충남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2021. 8. 16. 은행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던 김천 섬계서원 조선조 서원 건축이 일대 붐을 이루면서 그 입지를 선택할 적에 키가 된 요소 중 하나로 나는 은행나무를 꼽는다. 성균관이건 서원이건 향교건 그 설립자 겸 재단 이사장은 불변인데 공자가 그 주인공이다. 《장자》에 보면 공자가 가르친 학교 혹은 학단을 행단杏壇이라 표현했다. 이 행杏은 새김이 살구와 은행 두 가진데 조선에서는 은행으로 통일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함을 표방하는 모든 시설은 은행나무를 심어 표식을 삼았다. 그렇다면 은행나무가 없으면 어찌 할 것인가? 은행나무 근처에 학교를 세우면 된다. 경북 김천의 섬계서원이 바로 이런 곳이다. 저 은행나무는 수령 오백년을 상회하는 노거수다. 섬계서원은 그 역사가 고작 이백년이다. 답은 나왔다. 은행은 유교 건축에서 이리도 중요한데 아무도 .. 2020. 12. 20. 줄줄이 유물 이야기-대형 삼층책장 1전시실 마지막 모퉁이에 커다란 삼층책장이 있다.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원래는 박물관 본관을 들어오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때 그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셔 “그 자리에 삼층책장이 있었는데, 지금도 가면 볼 수 있느냐.” 라고 문의전화를 주신다. 내가 박물관 입사하기 훨씬 전 일인데... “글쎄요...” 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그 분에게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 1전시실로 이동했어요! 삼층책장 보러 박물관 놀러오세요!” 커다란 풍채에서 주는 책장의 위엄이 느껴진다. 장식적인 요소는 최소화 하고, 견고성과 실용성 중심으로 제작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옆에 서 보았다. 올려다 볼 정도로 크다. 그럼 이렇게 커다란 대형 .. 2020. 5. 16. 21세기 서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21세기 서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김태식 연합뉴스 아들놈의 서당 체험 2019년 지금은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는 그 유명한 고3생인 아들 얘기다. 언제쯤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나,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한 살 터울인 그의 이종사촌 동생과 더불어 대략 열흘가량 지방의 어느 서당학교에 인성교육이란 프로그램에 보낸 적이 있다. 집사람이 주동해서 일으킨 ‘사변’이었다. 얼추 5~6년이 흐른 지금, 나는 새삼스레 그때 기억이 떠올라 집사람한테 물어봤다. “무엇 때문에 애들을 서당에 보냈소?” 대답은 이랬다. “애가 하도 산만해서, 어딘가 봤더니 서당에 보내면 좋다 해서 그래서 보냈지.” 교육내용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들놈한테 다시금 물어보고 싶으나, 다시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듯해서 말조차 꺼.. 2019. 5. 4.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