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루11 누룽지가 없는 시루 밥짓기 쌀을 냄비에 담아 밥을 지으면 아무리 잘지어도 바닥에는 탄 쌀의 층, 쉽게 말해 누룽지가 생긴다. 시루에 종이 (천)를 깔고 밥을 해 보니, 누룽지가 없다. 누룽지가 있어야 숭늉도 있을 거 아니겠는가? 누룽지와 숭늉은 쇠 솥이 없던 시절에는 맛보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누룽지와 숭늉은 삼국시대나 되야 한국인의 식단에 등장했을 수도 있겠다. 2023. 11. 10.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뭔지 모르겠지만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청동기시대 시루가 나오는 것을 보고, 청동기시대 한국인 주식은 떡이라고 하는 주장도 봤는데, 그게 아니고 곡물을 씻어 적당히 불렸다가 쪄내면 거의 전기밥통 수준의 밥이 나온다. 생각보다 훨씬 밥이 잘 지어져 놀랐다. 필자 세대 사람들은 찐밥 하면 학생식당과 군대밥의 추억이 너무 강한데, 쪄서 먹어보니 시루밥은 그런 요즘 식 찐밥과는 완전히 달랐고, 오히려 고두밥에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곡물을 잘 씻어 불렸다가 시루에 넣고 30분만 쪄보면 필자의 말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밥이 나온다는 것은 밥-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 포맷이 이미 청동기시대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주식인 곡물밥이 완성되면, 부식을 준비.. 2023. 11. 10. 청동기시대 시루는 어떻게 사용했을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인터넷에는 청동기시대 시루 사용법이라 해서 보이는 그림이 있는데, 이와 같다. 아마 제일 오른쪽이 시루의 그림인 것 같은데, 위 그림처럼 시루로 찔 때 위에 아무것도 덮지 않으면 절대로 내용물은 익지 않는다. 어떻게 아나? 필자가 테스트 해보니 그렇다 이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위에 뭐라도 덮어야 한다. 또 다른 인터넷에 있는 그림을 보면, 이와 같은데, 필자가 보기엔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위에 뚜껑이 덮인 상태가 맞다. 만약에 청동기시대 토기에 뚜껑을 덮어 조리할 수 있다면 토기에 직물을 깔고 아주 훌륭하게 익은 밥을 만들 수 있을 거이라는 게 필자 생각이다. 어떻게 아는가? 필자가 해봤다. 중요한 것은 저 청동기시대 토기가 뚜껑의 무게를 정말 이길 수 있겠는가 .. 2023. 11. 10. 시루의 일대 변혁 현재의 우리한테 익숙한 시루 똥꾸녕이다.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음양오행이 작동한 구녕 배치다. 삼국시대 시루도 다 이래서 구멍이 딱 음양오행을 구현한다. 가운데 구멍을 중심으로 테두리로 구녕 6개 8개 등등으로 박는다. 한데 이 시루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녕 숫자가 중구난방이라 바늘로 풍선 찌르듯 곳곳에 구멍을 뽕뽕뽕뽕 뚫는다. 그래서 구멍 숫자가 졸라 많다. 이 시루 똥꾸녕 디자인 변화를 통해 한반도에 음양오행설이 언제 상륙 정착했는지를 안다. 2020. 5. 31. 신라 유적에서 출현한 ,1600살 펭수 직계조상 5세기 사람 모양 시루 뚜껑 경산서 출토송고시간 | 2019-12-03 09:38소월리 유적 구덩이서 바닥 깬 시루 몸통과 함께 확인 5th century human-faced earthenware 5世紀の人の形甑蓋慶山で出土所月里遺跡ピットで底破った甑胴体と確認 펭~하! 이제 고작 10살난 남극 펭, 빼어날 수 펭수는 애미 애비를 모른다. 제깐에는 뭐라 족보를 대는 듯하지만 믿을 수는 없다. m미토콘드리아 조사를 통해 그런 펭수의 먼 직계조상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살아계신다면 연세는 대략 1600살. 사신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산소가 이곳에 있으니, 아마 이 동네 어간에서 나고 자랐을 것이다. 암튼 이 분이 출현함으로써 종래 신라인의 얼굴이라 칭송하던 반쪽짜리 와당이 자리보존을 장담치 .. 2019. 12. 3.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