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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4

일란성쌍둥이 왕궁과 왕릉 왕릉은 왕궁이다. 왕궁을 왕릉에 투사하면 둘은 오버랩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피사체다. 이 평범하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너무도 쉽사리 무시되곤 했다. 그랜드디자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2014. 5. 31) 왜 투사하는가? 같은 집이기 때문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 집이라는 특성이 너무 쉽게 망각되곤 한다. 고고학은 무덤을 파면서도 집을 판다는 생각을 못한다. 내가 보는 거의 모든 고고학도가 그렇다. 이 집을 이해해야 무덤을 더 깊이 파고든다. 물으면 그걸 누가 모르냐 하는 헛소리를 자주 듣는데 그 무덤을 생전의 집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무덤 정의만 해도 입이 아프게 떠들었더니 이제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많은.. 2023. 5. 31.
왕궁 왕릉 종묘 사찰을 하나로 묶는 그랜드디자인 왕릉에 대한 이해의 출발은 왕궁이다. 왕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왕릉이 안보인다. 둘은 왕이 거주하는 집이다. 나와바리가 다를 뿐이다. 왕궁은 살아있는 왕의 독점적 구역이요 왕릉은 죽은 왕들의 조차지다. 이 둘이 만나는 접점이 종묘다. 종묘는 두 가지를 한 군데로 봉합한다. 이런 이해는 사찰에 대한 그것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사찰은 부처님의 집이다. 그 집은 불교 도입 초창기엔 생전의 집(대웅전)과 사후의 집(탑파)가 착종하다 고려시대 이후엔 급속도로 대웅전 중심으로 재편한다. 탑은 사라졌는가? 대웅전으로 통합됐을 뿐이다. 탑이 애초에 중국에 상륙했을 적에 그것을 원묘圓廟와 같은 용어로 번역하곤 했으니, 이는 탑파가 지닌 원초적 의미가 추모에 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廟로서의 탑파가 훗날 대웅전 하나.. 2023. 5. 31.
무덤은 집이다, 고로 왕릉은 왕궁이다. 이 평범성을 확인하는 데 나로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고고학 개론이나 건축학 개론 같은 데서 이런 말이 아마 보일 수도 있을 텐데 내 성정으로 보아 나는 그런 말들이 보인다 해도 개무시했을 테니 무엇보다 내가 직관하는 일이 중요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좋게 보아 우직하다 할 테고 또 한편에선 시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 살았다. 내가 간접으로 누군가의 교시를 따라 그것을 어느 순간 이후 내것으로 체득하면서 아 이게 내것이다 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저와 같은 것들은 설혹 이른바 선배 선학이 그런 말을 했다 해도 순전히 내것이라고 믿는다. 왜? 내가 본 그 무수한 고고학 건축학 관련 글에서는 저 비슷한 말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 2023. 4. 21.
하산길 잘못 들어 발견한 아라가야 왕궁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 7일, 아라가야 실체를 드러낼 왕궁 추정지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나아가 일본서기 등지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와 같은 여러 표기로 등장하는 가야 제국(諸國) 중 하나로 그 중심지가 지금의 경남 함안이고, 삼국 중에서도 특히 신라와 백제가 쟁패한 6세기 무렵 중요한 정치체라는 편린 정도만 남겼을 뿐이다. 한데 연구소에 의하면, 이러한 아라가야가 궁전으로 삼았을 법한 고고학적 증거를 마침내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이날 발표에 의하면, 그간 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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