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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중후기와 병행한 에도막부 본거지 에도성 항공사진이다.
전반으로 보아 이곳 역시 동아시아 전통의 그랜드디자인을 따른다.
나는 그것을 남면南面과 조알朝謁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거니와,
남면은 그 주인되는 시각이요, 조알은 그 객체하는 시각이다.
항상 주인 오야붕은 북쪽 정중앙을 차지하며 남쪽 태양을 바라보는 반면, 신하를 필두하는 만백성은 그런 왕을 향해 북쪽으로 엎드려 조알한다.
물론 이 조알은 동서 양쪽에 배열하기도 하는데, 이는 vari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원명청 왕조가 차례로 황제 본가로 쓴 북경 자금성이다. 그 역시 한치 어긋남이 없다.
그에 견주어 조선왕궁은 이렇다.
그랜드 디자인은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동아시아 그랜드디자인에서 유독 조선왕궁은 어떤 점에서 돌발인가?
해자가 없다!
왜 없을까?
혹 있는데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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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론](1) 쌍궐, 그 variation으로서의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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