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범성을 확인하는 데 나로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고고학 개론이나 건축학 개론 같은 데서 이런 말이 아마 보일 수도 있을 텐데 내 성정으로 보아 나는 그런 말들이 보인다 해도 개무시했을 테니 무엇보다 내가 직관하는 일이 중요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좋게 보아 우직하다 할 테고 또 한편에선 시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 살았다. 내가 간접으로 누군가의 교시를 따라 그것을 어느 순간 이후 내것으로 체득하면서 아 이게 내것이다 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저와 같은 것들은 설혹 이른바 선배 선학이 그런 말을 했다 해도 순전히 내것이라고 믿는다.
왜? 내가 본 그 무수한 고고학 건축학 관련 글에서는 저 비슷한 말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아니한 다른 글에서는 그런 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건 순전히 내 발명이라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요지의 말을 두어 번 한 적 있다. 나는 선행연구성과를 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것이 설혹 표절 혐의를 씌운다 해도, 나는 이리 말했다. 내가 보지 아니한 어떤 글에서 내가 한 말과 같거나 비슷한 주장을 했다면, 그 친구가 나만큼 똑똑한 증거라고 말이다.
나는 그리 살았고,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다. 내가 체득하지 아니한 것은 내것이 아니라는 그 믿음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요새 고고학 혹은 그 성과를 전시하는 코너 같은 데서 저 말이 부쩍부쩍 자주 보이더라.
그런 표현을 대할 때마다 나는 빙그레 웃고 만다.
저 말을 쓴 사람이 출처가 김태식임을 알겠는가?
내가 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정의를 체득하는 과정에서 물론 무수한 고고학 발굴현장, 특히 무덤 발굴현장과 왕릉 답사가 중요했다.
무덤이야 내가 지겹도록 봤으니 잠시 뒤로 제끼고, 조선왕릉은 내 기억에 2015년 스페인 세비아에서 열린 제39차인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무렵까지 내가 돌아본 왕릉은 몇 군데 되지 아니했으니, 그 총회 현장에서 귀국하고는 곧바로 집중으로 왕릉을 돌아다녔다.
내가 저들 현장에서 본 것은 그랜드디자인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과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인 무덤이 왜 이리 똑같을까를 생각했다. 잠자는 공간을 안채라 하는데, 그 안채가 바로 무덤방이었다.
이런 따위가 의문처럼 꼬리를 물었으니, 왕릉은 실상 왕궁의 판박이었으니 그때서야 나는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요, 왕릉은 또 하나의 왕궁임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이후 나는 이런저런 자리에 서면 언제나 저 말을 강조하며 무한 반복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런 '발견'이 나로서는 유레카였다고 호들갑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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