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완용글씨10 [서예가 이완용] (5) 안진경을 흠모했지만... 그 주인 행적은 일단 젖혀두자. 철저하게 글씨만 놓고 보더라도 이완용 글씨가 ‘좋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는 약간 갸웃거려진다. 앞서 이완용이 ‘평상심시도’를 즐겨 썼다고 했는데, 남아있는 (사진 1)를 보면 바탕이 크건 작건, 글자 배치나 획 움직임이 거의 같다. 독창성이 별로 없는 셈이다. 또 백은의 글씨와는 달리 글자가 너무 매끄러워 보인다. 비백이 있음에도 거칠다기보다는 부드럽게 흘러가버린다고 해야 할까. 선승의 글씨를 흉내내긴 하였으나 그 내용이나 글씨체 의도에 제대로 맞게 쓴 것 같지는 않다. 는 상대적으로 좀 덜하지만, 이완용의 다른 글씨(사진 2)를 보면 획의 과장이 때로 심하게 느껴진다. 술을 좀 과하게 했던지, 아니면 자기 자랑하는 맛에 글씨를 썼기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애초에 기교가 승.. 2024. 8. 1. [서예가 이완용] (3) 에도 선승 백은白隱 혜학慧鶴 아무래도 글쓴이가 이완용이다 보니 베낀 대상도 일본인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이 있게 마련이다.그런데 그 선입견이 맞아떨어진다.백은 혜학(白隱 慧鶴, 1685~1768)이란 일본 에도시대 선승이 그 주인공이다.백은 혜학 - 일본어로는 ‘하쿠인 에가쿠’라 읽는다. 그는 일본 임제종臨濟宗의 개혁자이자 중흥조로 꼽힌다.임제종은 간화선看話禪 곧 화두를 들고 참선하며 깨달음을 찾아가는 중국 선불교 한 종파로, 우리나라 선종도 고려 말기 태고太古와 나옹懶翁 이후 임제종 법통을 이어받게 된다. 백은 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뒤 특히 대중 포교에 힘썼는데, 어디서든 누구하고든 친구처럼 지내고 쉬운 말과 그림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이해시켜주었다 전한다. 백은은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평생 1만 점가량 서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2024. 7. 30. [서예가 이완용] (2) 선필禪筆을 따른 자취 이완용의 트레이드마크라고까지는 못해도, 그가 유달리 많이 써서 남긴 글씨가 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곧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이다’라는 내용이다(도 1, 2). 이는 중국 선불교의 종장宗匠 중 한 분인 마조 도일(馬祖 道一, 709~788)의 법문 중 한 구절이라고도 하고 남전 보원(南泉 普願, 748~834)의 말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분별을 끊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 ‘평상심’이 바로 진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글씨가 바로 그 ‘평상심시도’다. 한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 ‘평평할 평平’은 툭 내던지듯이 쓰고, ‘항상 상常’은 붓을 깊이 눌러가며 한 획에 찍어냈는데 수건 건巾 획을 둥그렇게 두 바퀴 굴리고서 밑으로 쭈우욱 그었다. 붓이 끝나는 자리에서 미련 없이 붓대를 다시 벼루로 옮긴다.. 2024. 7. 28. [서예가 이완용] (1) 김은호가 기억하는 일당一堂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 1858-1926) -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 일본제국의 조선귀족 후작侯爵 각하, 친청親淸에서 친미親美, 친로親露, 마지막 친일親日까지 자신의 정치행보를 끊임없이 바꾸어온 이. 살아생전 온갖 권세는 다 누렸으나 천하의 매국노로 지금껏 지탄을 받는 사람. 그는 살아서는 물론 죽고 나서도 사람들의 분노를 받아야했고, 깊은 산중에 자리했던 무덤마저도 파헤쳐졌다. 천만영화 의 모티브가 70년대 그 증손자가 벌인 이완용 부부 묘의 파묘였다니 지금까지도 이완용,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나은 수식어가 있다면 “명필”이다. 이완용이 붓글씨를 잘 썼다는 것은 유명하다. 대한제국 시기 그는 궁궐 현판과 상량문을 쓴 경험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 2024. 7. 28.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