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평상심平常心은 도道였는가 5>
그 주인 행적은 일단 젖혀두자.
철저하게 글씨만 놓고 보더라도 이완용 글씨가 ‘좋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는 약간 갸웃거려진다.
앞서 이완용이 ‘평상심시도’를 즐겨 썼다고 했는데, 남아있는 <평상심시도>(사진 1)를 보면 바탕이 크건 작건, 글자 배치나 획 움직임이 거의 같다.
독창성이 별로 없는 셈이다.
또 백은의 글씨와는 달리 글자가 너무 매끄러워 보인다.
비백이 있음에도 거칠다기보다는 부드럽게 흘러가버린다고 해야 할까.
선승의 글씨를 흉내내긴 하였으나 그 내용이나 글씨체 의도에 제대로 맞게 쓴 것 같지는 않다.
<평상심시도>는 상대적으로 좀 덜하지만, 이완용의 다른 글씨(사진 2)를 보면 획의 과장이 때로 심하게 느껴진다.
술을 좀 과하게 했던지, 아니면 자기 자랑하는 맛에 글씨를 썼기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애초에 기교가 승한 인물인지라 ‘채소 기운(蔬筍之氣)’이 서려야 하는 내용마저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획을 이렇게 과장해서 길게 뽑으면 겉으로는 멋있게 보이긴 하지만 외려 격은 떨어지는 법이다.
또 그가 본받았다는 안진경 작품을 보면 때와 장소에 따라 글자 모양을 다르게 적용한다.
예컨대 <제질문고祭姪文藁>(사진 3)에서는 뚝뚝 끊어지는 듯한 글자의 리듬과 교정 흔적에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지만, <걸미첩乞米帖>(사진 4)에서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필치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암시한다.
천고의 역적 이완용은 (그 행적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붓을 쥐고 글씨를 운영하는 태도도 만고의 충신 안진경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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