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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6

독재권력, 그 저항의 신으로 조작된 정도전 주로 역사 드라마를 고리로 정도전이 이렇게 주물鑄物되었겠지만, 그 드라마 대본의 남상濫觴들을 보면 결국 그것은 20세기 역사학의 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드라마, 그리고 그 토대가 되는 역사학 연구를 보면 언제나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 절대권력에 견주어 그것을 견제하는 대항마로써 재상 중심 신권臣權정치를 구현하고자 애쓴 인물로 나온다. 엥? 정도전이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려 했다고? 어떻든 이 작전은 성공을 거듭해 마침내 그것이 새로운 신화를 낳았으니,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드라마는 삼봉을 불러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언제나 백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저항의 심벌이다. 그럴수록 정도전은 언제나 독재 혹은 절대권력과 맞서는 위대한 신으로 재탄생한다... 2023. 10. 10.
조선왕조 정치를 왕권과 신권으로 이분한 한영우 조선전기, 특히 조선의 건국과 그 초창기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소재로 삼는 드라마 영화가 넘쳐나니 우리 세대엔 김무생이 이성계로 나오고 유동권과 최명길이 각각 태종과 태종 마누라로 분하며 김흥기가 정도전을 연기한 《용의 눈물》이 특히 각인한다. 지금 내가 이야기한 등장 배우도 각종 이 시대 배경 각종 드라마가 착종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저 시대를 무대로 삼은 저들 영상 프로그램이 하도 많은 까닭이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여느 시대보다 저 시대가 한국사 역동성을 말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데 저 무수한 드라마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어 신통방통하게도 언제나 저 시대를 편가르기하기를 왕권과 신권이 쟁투하다 결국 왕권이 승리했다는 구도가 그것이라 이에는 한 치 예외가 없어 왕권 혹은 그에 기반.. 2023. 2. 15.
정도전은 괴력난신? 정도전 열전을 읽다보면, 아 이 사람이 도통 당시의 고려가 얼마나 마음에 안 들었길래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때로는 그게 지나쳐 엉뚱한 이야기까지 늘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도전이 공양왕에게 이런 말을 한다. 今當農月, 天久不雨, 殿下召臣面議, 天乃雨. 昔霾霖, 禾穀不茂, 殿下召臣議政事, 陰雨霽. 殿下以爲何如? 한자가 한 자 이상이니 대략 번역을 해 보면... "지금 농사철이 되었는데도 하늘이 오래도록 비를 내려주시지 않다가 전하께서 신을 불러 마주하고 의논하니 하늘이 곧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예전에 장마가 져서 곡식이 잘 자라지 못했는데 전하께서 신을 불러 정사政事를 의논하니 장맛비가 개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양왕 입장에선 "자기가 무슨 무당인가? 삼봉 이 .. 2021. 10. 9.
도은陶隱이 삼봉三峯을 그리며 도은집陶隱集 제2권 / 시(詩) 삼봉의 은자를 생각하며〔憶三峯隱者〕 벼슬살이 십여 해 동안 사는 곳 숱하게 옮겼지 생계는 솜씨 졸렬하나 도를 꾀했으니 썩 가난하지는 않았소 고고해서 다른 이 등돌려도 때로 옛 벗은 생각은 나네 온종일 제자리에 멈춘 구름 아스라이 한강변에 떠 있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8 游宦十餘載。僑居遷次頻。營生雖甚拙。謀道未全貧。落落負餘子。時時思故人。停雲終日在。縹渺漢江濱。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이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생각하며 쓴 시라, 그리 절친한 둘은 조선왕조 개국을 두고서는 길이 갈라져 한 사람은 비명횡사했으니, 그렇게 살아남은 한 사람은.. 2020. 12. 16.
단양 도담삼봉 (2016. 8. 21) *** 정도전 호가 삼봉三峰, 세 봉우린데 바로 이 도담삼봉島潭三峯에서 비롯한다. *** 한데 내 지인이 지적하기를 도담삼봉을 정도전과 연결한 것은 속설이며, 실제 삼봉은 삼각산, 곧 지금의 북한산을 말한다고 한다. 나는 이쪽을 깊이 조사해보지 아니한 까닭에 두 가지 설을 다 적어둔다. 2020. 8. 21.
적대적 변용, 아주아주 편리한 주어 바꿔치기의 유혹 불교가 중국에 상륙한 이후 초반기 선두에 서서 그와 쟁투한 흐름은 유교보다는 실은 도교였다. 구겸지(寇謙之·365~448) 시대 북위 도무제(道武帝)가 불교를 고사 직전으로 몰아넣은 것도 그 뒤를 추동한 세력은 도교였다. 대(對) 불교 투쟁은 당말(唐末)이 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전개되거니와, 유교가 본격 가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자성리학은 실은 한유(韓愈·768~824)를 시발로 삼거니와, 그 성리학이 한유에게 배운 것은 격렬한 불교 혐오주의였다. 이 《파사론破邪論》은 글자 그대로는 사악함을 깨뜨린다는 뜻이거니와 법림(法琳·572~640)이 말한 사악함은 주로 도교였다. 도불(道佛) 투쟁사에서는 《법원주림(法苑珠林)》과 더불어 너무나도 중요한 문헌이다. 우리는 도교를 향한 극혐을 통해 역으로 당시 .. 2018.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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