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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10

두 번의 죽음과 두 번의 즉위 이걸 구미권에서는 그렇게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은 듯하나 동아시마 문화권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죽음은 크게 각각 두 차례 분기가 있다. 첫째 생물학적인 죽음이니 그 직후 내부 절차를 거쳐 그가 죽었음을 대외에 공표하니 이를 발상發喪이라 한다. 실제 죽음과 발상 시점이 며칠 차이를 두기도 하는데 진 시황제의 경우 순행 중에 죽어 그 시체를 장안에 데리고 와서야 비로소 발상하니 그 새 소금에 절인 시신은 구더기로 들끓었다. 장안에 와서 비로소 발상한 이유는 반란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수도에서 발상하느냐 아니냐 무슨 차이가 있냐 하겠지만 이를 감내해야 하는 현재의 권력은 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암튼 이것이 생물학적인 죽음이라 문제는 그 시체를 묻기까지 과정이다. 이 기간을 빈殯이라 하며 매장까지 시인을 안.. 2022. 9. 20.
누구나 죽기는 싫다 죽기 싫은 건 동서고금, 남녀노소가 혼연일체. 〈‘사’ 자를 가지고 우스개로 짓다得死字戲題]〉 이 죽을 사라는 글자 달갑지 않아 不喜此死字 인간이 반드시 지닐 것은 아니네 人間莫須存 풍군이 새로이 팔괘 그어 만들었고* 風君初作畫 수제는 일찍이 불태우지 아니했네* 水帝曾未焚 귀천 가림 없이 모두 땅에 묻히고 貴賤同歸土 현우 따짐 없이 함께 문*에 든다네 賢愚共一門 삭제할 것은 삭제한 사람 없었으니* 無人削則削 천년 세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지 千載敎兒孫 김우급(金友伋, 1574~1643) *** *풍군(風君)이……만들었고 : 풍군은 복희씨(伏羲氏)를 이른다. 그의 성이 풍(風)이므로 풍군이라고 한 것이다. 복희씨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그림을 보고 팔괘(八卦)를 그어서 처음으로 《주역》을 만들.. 2020. 11. 25.
요절한 딸을 향한 애끓는 영조의 한탄 화협和協은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와 그의 후궁 영빈이씨(暎嬪李氏) 소생이다. 계축년, 1733년 3월 7일 궁에서 태어난 화협은 11살에 영성위 신광수申光綏한테 시집갔다가 임신년, 1752년 11월 27일에 대사동大寺洞 집에서 죽으니, 이제 겨우 스무살이었다. 그가 죽자 영조는 딸을 위한 묘지명을 직접 지었다. 묘지명은 땅속에 묻어버리는 까닭이라 생각했음인지, 이곳에다가 필설을 토로하며 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제왕은 자고로 자기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영조는 격정적이었다. 여기 영조가 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피로 쓴 애도문이 있다. [崇禎三癸酉二月二十九日][御製和協翁主墓誌 墓在金谷平丘村] 앞면 第七女和協卽暎嬪所生也. 癸丑三月初七日, 生于大內. 己未封爵, 十一歲下嫁永城尉申光綏,.. 2019. 10. 7.
제때 죽어야 한다 September 20, 2015 체 게바라 (1928~1967) 무스타파 케말 파샤 (1881~1938) 일찍 죽어 성공한 친구들이다.더 해먹었으면 차우셰스쿠 (1918~1989) 꼴 났을 사람들이다. 언제 죽을지 잘 선택해야 한다. 이를 두고 외우 신동훈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혁명가는 요절하면 전설이 되고 학자는 오래 살아야 대가가 된다. 기억할 만 해서 적어둔다. 2019. 9. 20.
수국水菊에서 나는 죽음과 종말을 본다 훈육의 여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수국은 왠지 모르게 초췌와 연동한다. 아무튼 이 예쁜 수국더러 하필 그리 생각하냐 묻지 마라. 핏기 없는 살갗? 파리함? 그리하여 언제나 당집 혹은 상여집과 어울린다는 그런 연상이 나한테는 있다. 고향 무당이 내 대모셨는데 그 당집에 수국이 있었던 듯 하고 후미진 계곡 상여집에도 수국이 있었던 듯 하다. 음침한 계곡 벼랑에 주로 피지 않았나 하는데 마침 빛깔도 파리하다. 수송동 공장 전면 어느 카페가 이 수국을 내어놓았다. 나는 언제나 수국에서 죽음과 종말을 본다. 2019. 6. 4.
남자 무덤에 다리미는 왜 묻었을까? 다리미가 동아시아 고대의 무덤에서 꽤 많은 수량으로 출토한다. 앞 사진은 공주 송산리 왕 부부를 합장한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 현실玄室 중에서도 왕비를 묻은 쪽 발치에서 나왔다. 다리미라고 하면 대체로 여성이 옷을 다리는데 사용하는 도구라 하지만, 그런 까닭에 여성이 전유專有하는 기물器物이라 하지만, 의외로 남성을 묻은 곳에서도 적지 않게 출토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비단 무령왕릉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 고대 동아시아 무덤 매장 패턴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그 출토 위치를 보면 피장자被葬者의 머리 아니면 발치 쪽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아니, 질문을 바꿔본다. 왜 다리미를 무덤에 피장자와 더불어 매장하는가? 나는 이를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본다. 요컨대 칠성판七星版이거나, 그 대용품으로 .. 201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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