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졸저 《직설 무령왕릉》에 담는다고 하다가 그만 잊어먹고 빠뜨린 대목이라 아쉬움이 크다.
늦었으니 어찌 하리오?
무령왕릉 묘권墓券 제1장 제1쪽은 흔히 무령왕 묘지墓誌 혹은 묘지석墓誌石 혹은 묘지명墓誌銘이라 하거니와,
이에는 무령왕이 언제 몇 살로 죽어 어찌해서 이곳에 묻히게 되었는지 간단한 내력을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는 묘지명이 아니라 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관련 증서, 그러니깐 묘권墓券의 일부로써 서문에 해당하는 대목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의하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年 62세 되던 해인 계묘년癸卯年 5월 병술丙戌 삭朔 임진壬辰일에 ‘붕崩’ 했다고 한다.
붕이란 붕 떴다는 말이니 죽었다는 말의 높임 혹은 은유다.
한데 이에서 이 글자를 발견한 이들은 백제가 주체적인 고대국가였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는 억눌린 사대주의에 대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 까닭은 崩이라는 글자는 오직 황제나 황비에게나 쓰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로써 보면 백제 역시 다른 때는 어떤지 모르나 무령왕 시대에는 황제를 자칭했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崩이라는 글자에서 캐낸 민족주체성이야말로 무령왕릉 최대의 발견품이라고 했던 것이다.
한데 문제는 또 있다. 그렇다면 과연 崩이라는 글자는 황제 혹은 그에 견줄만한 인물들의 죽음에 대해서만 썼냐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이를 살피기 전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저 묘권은 일단 무덤 문이 단힌 다음에는 독자讀者가 없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한다.
일단 무덤 문을 봉하고 난 다음에는 무령왕의 죽음을 붕이라 했는지, 아니면 제후에게나 쓴다는 훙薨이라 했는지, 아니면 그냥 死라고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저 글자 하나를 두고 민족주체성 운운하는 환호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이 된다.
극단적으로 내가 죽어 崩이라고 썼다한들 그에 무에 대수냐는 문제를 도발한다.
지 멋대로 쓰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망각한 언어도단과도 같은 주장이다. (2016. 6. 7)
***
저 崩 이라는 글자 쓰임에서 또 주목할 점 두 가지가 더 있으니
첫째 그 본래하는 의미, 둘째, 인신引伸으로서의 부모의 죽음이 그것이다.
저 글자는 뜻을 한정 혹은 표지하는 부수자가 山이며, 朋은 발음을 표시하는 형성자이어니와,
그 본래 의미는 간단히 말해 산이 붕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꼭 천자 죽음이 아니라 해도 산이나 언덕의 죽음 역시 崩이라 한다는 사실이니, 이는 현재도 저 글자 쓰임을 보면 崩壞[붕괴] 같은 데서 항용 본다.
다시 말해 저 글자는 저때도 단지 천자의 죽음만이 아니라 건축물 붕괴에서도 간단없이 썼다.
그런 쓰임으로 보건대 제후의 죽음을 崩이라 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그 인신으로서 꼭 천자만이 아니라 부모, 특히 아버지 죽음을 崩 혹은 천붕天崩이라 했으니,
이에서도 崩이 꼭 천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죽음에도 널리 쓰였다는 단적인 반증이 된다.
다시 말해 백제왕 죽음을 崩이라 썼다 해서 그걸로 천자국을 자처했네 마네 하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2024. 6. 7 보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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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무령왕릉 추보》(1) 박물관 뜰의 쌀가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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