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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순수비20

진흥왕이 순수비 세운 데가 하필 비봉인지를 제대로 물어야 한다 저 의문을 더는 미룰 수도 없고 더는 미뤄서도 안 된다. 의문이 없는 데서 무슨 창안創案이 나오겠는가? 사방을 조망하기 좋아서? 그에선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문제는 저런 데가 많을 텐데 하필 저 지점인가다. 이번 신영동 고려시대 건물터 너머 저 현대식 건물들 뒤쪽으로 북한산 자락이 펼쳐진다. 형제봉을 기점으로 비봉 승가사로 어어지는 산록이다. 지금은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아니하나 이곳이 바로 정통으로 비봉이 조망하는 구기동 세검정 골짜기다. 왜 저 지점에 순수비를 세웠는가? 저 비봉에서 당시 한강 하류 유역을 다스리던 광역행정구역 치소治所가 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치소에서는 저 비봉 순수비가 보였다. 치소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저런 중요한 기념비를 세웠겠는가? 간단하다. 이번에 고려시대.. 2023. 5. 10.
비봉에서 조망하면, 진흥왕시대 신주新州 혹은 북한산주北漢山州 주치州治는 구기동 일대! 빛 좋은 개살구..아버지는 부자지만 본인은 정작 청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장성 독거가 천지 사방 서울을 휘젖는 중이라, 그 일환으로 북한산 기슭을 휘젖는 중이라 좀 전에 전화가 왔는데 윙윙 대는 배경음 딱 들으니 비봉이었다. 비봉에 서면 그 특유한 소리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비봉이라 했다. "첨 아니슈? 비봉비가 진흥왕에 의한 유교적 왕도정치 개소리라는 거 딱 느껴지지 않수?" "두 번째요" 웬일로 그짝에서 전화질인가 했더니만, 느닷없이 북한산주 주치州治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 아래쪽에 장의사며 하는 신라시대 전설 혹은 역사가 서린 곳이 적지 아니해서 심산으로는 그 아래 구기동 일대 어딘가에 북한산주 주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미쳤다고 순수비를 비봉에다 세웠겠소? 그 아래쪽이 주치였으니깐.. 2023. 3. 20.
진흥왕시대 신라 영역은 지도가 축소됐다 진흥왕 시대 신라의 국경선은 최소가 이것이다. 기존에 저 시대 신라 영역이라 표시된 지도는 다 오류다. 보통 이딴 식으로 그리곤 하는데, 왜 오류인가? 저 지도대로라면 진흥왕이 지들 국경선 끄터머리에 서서 여긴 우리 땅이라 표시한 셈이 되거니와, 어떤 미친 놈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실제 같은 순수비인 북한산 비봉비 역시 신라 영역 복판이었다. 순수비는 아니지만, 그와 성격이 비슷한 창녕비도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모조리 신라가 장악하고서 그 복판에다가 세운 것이다. 한데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만큼은 지금의 휴전선 혹은 DMZ 같은 데다 적들을 바라보며 성대한 의식을 하면서 그 끝에다가 저걸 세웠다고? 어떤 놈이 저 따위 망발을 일삼는가? 마운령비 황초령비는 저것을 세운 지점 주변 넓은 땅이 신라 .. 2022. 12. 24.
마운령, '그 너머'로서의 상징과 실질 세종 3년 신축(1421) 2월 7일(경자) 함길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단천端川 기원역碁原驛에서 시리역施利驛에 이르는 동안에 잇수[里數]가 매우 멀고, 또 마운령磨雲嶺을 넘는데 고갯길이 높고 험하여, 사람과 말이 모두 피곤하여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옵는데, 고개 아래에 옛 관館 터가 있사오니, 합배合排를 설치하여 부근 민호民戶를 거기에 부속시키게 하고, 또 홍원洪原 평포역平浦驛에는 역리驛吏가 한두 호戶에 지나지 못 하오니, 바라옵건대, 민호民戶를 뽑아 합배를 설치하여 도와주게 하소서.”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원전】 2 집 423 면 【분류】 교통-육운(陸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주-D001] 합배(合排) : 역(驛)은 아니나, 역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는 곳임. 세종 27년 을축(.. 2022. 12. 24.
'典' 한 글자를 읽어냈다는 파주 감악산비 "감악산 비에서 '典'(전) 자 확인"…과학적 정밀조사 마쳐 노승혁 / 2022-12-07 15:17:53 "감악산 비도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 크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2168561115 "감악산 비에서 ′典′(전) 자 확인"…과학적 정밀조사 마쳐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 파주시는 파주 향토문화 유산 제8호인 감악산 비의 과학적 정밀조사를 벌여 이제까지 몰자비(沒字碑·원래는 글자가 있었으나 모두 마멸된 비석)로 알려진 k-odyssey.com 몰자비沒字碑는 생성 과정이 크게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애초에 무슨 이유로 글자를 새기려 했지만,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아예 글자를 새기기 않고 비석만 덜렁 세운 경우가 있으.. 2022. 12. 10.
한여름의 단양신라적성비 2022.7.2.(토) 더웠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 잠깐 걷는 거였지만, 땀이 줄줄 났다. 사실 주차장이 있다. 길이 좁아져 미리 겁먹고 조금 멀리 주차하고 걸어왔다. 그리고 단양팔경휴게소에서 단양적성비로 통하는 길이 있어 쉽게 올 수도 있다. 가실 분들은 참고 하시길. 구름이 요상스러운 날이었다.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날이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비석의 아랫 부분은 그래도 상태가 좋은 편인데, 상단 부분은 깨져 없어졌다. 단양신라적성비는 장수왕 이후로 백여년간 고구려 영토였던 충북 단양 지역을 신라 진흥왕대 550년경에 공격해 차지한 뒤 현지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은 문화재청 설명으로 대신하겠다. 원래는 단양 적성 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으니, ..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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