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춘천 중도5 2014년 춘천 중도 유적 발굴, 개판 발굴을 폭로하다 몇 십 년 지나 후대 고고학도들은 지금의 발굴을 어떻게 바라볼까?그 평가가 두려우면 맘 편히 일찍 죽거나 비름빡 똥바를 때까지 살아서 지도위원 행세를 할 수밖에 없다.80년대 중도 국박 발굴지를 근자에 새로 팠더니 당시엔 주거지 어깨선도 못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최근 한성백제박물관이 몽촌을 팠다가 80년대 발굴 트렌치를 봤더니 처참했다.물 나온다고 포기하고 트렌치 방향도 삐뚤삐뚤, 트렌치도 보고서에 누락하고 난리블루스다.빨리 죽거나 오래 살아라. (2014. 8. 8) *** 지금으로부터 꼭 십년 전 오늘, 춘천 중도 발굴현장에서 나는 저와 같이 적었다. 춘천 중도 발굴은 70말 80년대에 국립박물관에서 했으며 당시 이백규 한영희 이건무 이강승 등이 했다.이강승은 반세기 뒤 저 중도 발굴에 자문위원인지.. 2024. 8. 8. 춘천 중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고구려(2015) 2015.06.03 10:16:26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귀고리 출토(종합) 삼국시대 석곽묘서 발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레고랜드 예정지인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금귀고리 1점이 발견됐다. 중도 유적 5개 합동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중 한 곳인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은 중도 유적에 대한 2차 조사에서 삼국 시대 소형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를 확인하고, 이에서 금제 굵은고리 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점을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무덤은 주축 방향을 북동-남서쪽으로 두었다. 마와 같은 땅을 깊이 가는 작물 재배 영향으로 덮개돌과 상단 벽석 일부가 교란돼 제위치를 잃었지만 시신과 부장품을 넣는 공간인 묘광(墓壙)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사 결과 묘광은 길이 320㎝, 너비 260.. 2023. 6. 10. 춘천 중도가 출토한 고구려 금귀고리? 춘천 중도 출토 이른바 고구려계 금귀걸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유물들이다. 보다시피 이상하리만치 이른바 고구려 무덤에는 한짝씩만 나온다. 그에 견주어 신라무덤인 황남대총에서는 쌍이다. 문제의 귀걸이가 출토된 곳은 사진에서 보는 석곽묘 바닥 비닐봉다리로 표시한 곳이다. 저 곳을 귀걸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다. 모르겠다. 귀걸이라면 고구려 여인들은 성인은 쌍으로 걸고, 미성년은 외짝을 걸었는지도. (2015. 6. 10) *** related article ***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춘천 중도 유적 석곽묘 출토 귀걸이. 이른바 고구려 귀걸이라 해서 화제인 바, 이런 소위 고구려 귀걸이는 한결같이 한짝만 출토한다. 나는 귀걸이를 의심한다... 2023. 6. 10. 맹꽁이만도 못한 한국고고학, 춘천 중도서 하룻만에 발굴 철수! 문화재 보존이냐 레고랜드 개발이냐를 둘러싼 논란 무대인 춘천 중도는 하중도河中島라, 지금은 의암댐에 사방을 둘러쳤으니, 춘천대교라는 교량으로 육지랑 닿는다. 이 중도는 의암호 수위에 따라 물이 차오르고 빠지곤 하거니와, 바로 이런 환경에서 말미암았는지 양서류 서식지이기도 한 모양이다. 양서류가 서식, 특히 산란하는 공간은 특징이 있으니, 이 친구들은 절대로 물이 흐르는 데다 알을 낳지 않는다. 떠내려가는 까닭이다. 그래서 물이 항상 고인 웅덩이나 저수지에다가 알을 대량으로 깐다. 엄청나게 쏟아내는데, 정력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이놈들이 떼거리로 부화하면 일제히 올챙이가 되니, 양이 많은 만큼 천적들한테 희생되는 일이 많다. 이 중도가 오죽이나 시끄러운가? 얼마 전엔 집권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이가 .. 2021. 3. 21. 2년전 오늘 춘천 중도 발굴현장에서 만난 고고학계 準원로들 *** 오늘부터 딱 2년 전인 2017년 6월 13일, 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로 그 전날인가 춘천 중도 레고랜드 예정지 발굴현장에서 만난 풍경 일부를 탈초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나는 해직 중이었고, 그때 나는 프리랜서, 간단히 말해 백수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데다 글을 기고하고 있었다. 어딘가 적을 두고 있다는 명함은 있어야겠기에,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명함을 파고 다녔다. 정확히는 그 무렵 창립한 국토문화재연구원 이사로 이름을 올린 고리를 빌미로 이리 적어 휘젖고 다녔다. 당시 여유가 좀 있었던 나는 뭐랄까? 고고학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그런 신념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 그 일환으로 이런저런 일을 해봤다. 그 전에도 절감했고, 이 무렵에 더 절감했지만, 가장 시급한 일은 당대사 정리이며,.. 2019. 6. 1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