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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4

폭발하는 일본발 대장경 수요, 하마터면 몽땅 내줄 뻔한 팔만대장경판 조선초기 실록을 보면 일본에서 대장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인쇄판 전질을 달라는가 하면 아예 경판을 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한데 이를 훑어보면 묘한 흐름들을 감지한다. 첫째, 이런 요구가 일본 조정 차원뿐만 아니라 권력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 단위 역시 많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옆집에서 얻었다니 나도 얻자는 심산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장경 수집 열풍이 있었다. 둘째, 전질 혹은 경판을 얻고자 일본에서 바리바리 선물을 싸오는가 하면 조정에서도 뻔질나게 사신을 파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조선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외교 경제 실익이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이를 조선에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측면은 경판을 주어버리면 일본애들이 더 이상 우리한테 굽신거리지 않게 된다는 조선 조.. 2023. 5. 17.
이규보 선생을 개무시한 오주 선생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라는 책을 편찬하여 한국 역사에 불후의 이름을 남긴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라는 분이 있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손자로 그 스스로도 책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인데, 뜻밖에 우리 고문헌에는 다소 어두웠던 것 같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중에 "석교釋敎·범서梵書·불경佛經에 대한 변증설辨證說"이란 글이 있는데, 거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논한 대목을 보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우리나라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또한 변증하지 않을 수 없다. 해인사는 경상도慶尙道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신라시대 고찰古刹이다. 경판經板은 해인사 보안당普眼堂 남쪽과 북쪽 두 각閣에 저장되어 있는데, 모두 15칸[間.. 2023. 4. 23.
팔만대장경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찍은 이규보 문집 《동국이상국집》 이규보 문집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集》은 현존하는 그 체제 골격이 다름 아닌 이규보 본인 뜻에 따랐으며, 나아가 그의 생전에 출판을 목전에 두었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만하다. 그 문집 앞에 붙은 그의 연보年譜에는 그의 아들 이함李涵이 쓴 서문이 있으니, 이로 보아 이 연보 또한 그의 생전, 혹은 늦어도 이규보 죽음 직후에는 이미 정리됐음을 본다. 이는 저 문집이 철저히 이미 이규보 당대에 후세를 위해 준비된 출판기획이라는 뜻이다. "함涵이 옛사람 문집과 연보를 보니 모두 연보 중에 그 저술한 본말과 이유를 소상히 적어 서로 참고가 되도록 하였으나 대개 옛사람 시집詩集이 꼭 저술한 연월을 표시하지는 않은다. (그럼에도 연원을 표시한 경우는) 무엇에 의거하여 소상하게 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가공家公(아.. 2023. 3. 2.
조선왕조 실록을 두번 목판에 새긴 고려왕조 고려시대의 대장경을 추정하건데: 팔만대장경의 글자수와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수가 5200만자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팔만대장경은 쉽게 말해서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게 얼마나 많은 글자수냐 하면 중국의 사기부터 명사까지 24사를 모두 합한 글자수가 5000만자가 안 된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이 끝이 아니고 그 앞에 초조대장경이 또 있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왕조 전체를 두 번 목판에 새기거나 중국 24사를 두 번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쯤되면 초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얼마나 거대한 문화적 성취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려시대 초기까지 축적한 한반도의 문화적 역량의 수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고자 할 때, 앞에서도 여러번 ..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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