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초기 실록을 보면 일본에서 대장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인쇄판 전질을 달라는가 하면 아예 경판을 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한데 이를 훑어보면 묘한 흐름들을 감지한다.
첫째, 이런 요구가 일본 조정 차원뿐만 아니라 권력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 단위 역시 많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옆집에서 얻었다니 나도 얻자는 심산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장경 수집 열풍이 있었다.
둘째, 전질 혹은 경판을 얻고자 일본에서 바리바리 선물을 싸오는가 하면 조정에서도 뻔질나게 사신을 파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조선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외교 경제 실익이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이를 조선에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측면은 경판을 주어버리면 일본애들이 더 이상 우리한테 굽신거리지 않게 된다는 조선 조정의 판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세종이 팔만대장경판을 주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넷째, 이런 뻔질난 요청은 불교의 악영향을 알고 있던 이른바 조선의 성리학적 지식인 그룹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빗발치는 대장경 수요를 정치 외교 경제에 이용하는 정부 정책에 이들 지식인은 반기를 들고 노골적인 불교 탄압책을 주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저런 요망한 불설 경판은 차라리 일본에 줘 버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조선 내부에서 빗발쳤다.
다섯째, 수요 충당을 위해 조정은 인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조선 전기에 유례없는 인쇄술 발달을 불러온 획기 중 하나가 대장경 인쇄였다. (2014. 5. 17)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땡중 방지 규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0) | 2023.05.18 |
---|---|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이 그림으로 채록한 상여 나가는 모습 (0) | 2023.05.18 |
[내성사신內省私臣을 폭로하다] (2) 중국보다 신라가 먼저 만든 내성內省, 자가당착하는 신라 관부官府 (0) | 2023.05.17 |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전송한 안태사安胎使 이명한李明漢 (0) | 2023.05.17 |
총사령관 임말리任末里를 희생한 김유신의 출세작 낭비성 전투 (0) | 2023.05.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