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항로3

소위 요서 백제군에 대하여 요서 백제군이 있었네 없었네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선학들이 자세히 이야기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더 쓰지 않는다. 사실 꼭 요서 백제군이니 아니니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느 세력이 국제항로를 장악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근거지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합법적인 형태로 현지의 권력과 타협한 집단 거주지이던가 (신라방, 차이나타운) 그게 아니면 비합법적 형태로 군사적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배타적 지역이 설정되던가 하는 것이다. 후자가 역사적으로 구현되면 그걸 가지고 해외식민지니 뭐니 하면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넓게 본다면 고조선 멸망 이후 한반도에 설치된 군현도 그런 시각 안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아래 그림을 보면-. 전술한 후기왜구의 영향권을 보면 빗금 쳐진 지역이 보인다. "왜구 근거지"라는 부분.. 2023. 5. 13.
후기왜구의 항해술 전술했듯이 일본에서 중국대륙으로 한반도 해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도항하는 루트는 견당사 때부터 이용되었는데, 네 척 보내면 두 척은 실종 될 정도로 위험한 항로였다. 하도 실종이 잦다 보니 일본이 신라에게 선불로 금을 주고 만약 견당사가 난파하여 한반도 해안으로 오면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신라에서 그렇게 했는지 안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필자가 아는 한 일본에서 중국 쪽으로의 항해는 송대까지도 일본이 주도하지 못했다. 당이 송으로 교체된 후에는 이른바 일송日宋 무역이라는 것이 가마쿠라막부와 송나라 사이에 있었는데, 이 무역을 주도한 사람들은 송의 상인들이었던 것으로 안다. 이 무역선이 난파한 것이 신안선이다. 여말선초의 소위 전기왜구도 주요 활동무대는 한반도 남해안을 따라 황해 일대의 중국 해안.. 2023. 5. 11.
말이 좋아 항해인 견당사 한강유역을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가 망한 후의 왜는 닮았다. 한반도 남해안-서남해-서해를 거쳐 북상해서 황해를 건너뛰는 항로는 앞에 쓴 글처럼 그 기원은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감이 분명한데-. 사실 이것이야 말로 요하 이동에서 일본에 이르는 지역의 문명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이 항로는 오래된 것만큼이나 정보축적이 많아 난구간도 있다고 하지만 비교적 용이하게 발해만과 황해 지역을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의 거의 모든 문화적 교류는 이 항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고 일본 야요이시대도 이 항로에 의해 개시된것이 분명하다. 앞서 쓴 것처럼 한강유역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멸망후 왜는 매우 닮은 상황이었는데. 왠고하니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백제의 눈치나 협.. 2023. 5. 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