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말이 좋아 항해인 견당사

by 초야잠필 2023. 5. 1.
반응형

한강유역을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가 망한 후의 왜는 닮았다. 

한반도 남해안-서남해-서해를 거쳐 북상해서 황해를 건너뛰는 항로는 앞에 쓴 글처럼 그 기원은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감이 분명한데-. 

사실 이것이야 말로 요하 이동에서 일본에 이르는 지역의 문명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이 항로는 오래된 것만큼이나 정보축적이 많아 난구간도 있다고 하지만 비교적 용이하게 발해만과 황해 지역을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의 거의 모든 문화적 교류는 이 항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고 일본 야요이시대도 이 항로에 의해 개시된것이 분명하다. 

앞서 쓴 것처럼 한강유역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멸망후 왜는 매우 닮은 상황이었는데. 

왠고하니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백제의 눈치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때문에 신라로서는 중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백제의 협조하에 항로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육지를 경유하여 고구려를 따라 입조하는 것 밖에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신라가 자유로이 중국과 오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데, 이러한 상황이 돌파된 것은 알다시피 진흥왕대에 한강 유역을 점유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만약 이 한강유역을 점유하지 못했다면 신라로서는 자유로운 중국과의 교신이 불가능해져 아마 통일전쟁의 성패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왜의 상황이 딱 이 시기 신라와 같았는데. 백제의 도움이 있어야 중국에 사신을 보낼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잘 알다시피 삼국통일은 왜의 재앙이었다. 

오래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항로를 더 이상 쓸 수 없어 중국에 가려면 신라에게 "치사하게 부탁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이것이 일본사에 나오는 "견당사 남로"다. 

견당사 남로는 말이 좋아 항로이지 그냥 망망대해에 배 띄우고 팔자에 맡기는 일이다.

육지가 눈에 안 보이는 바다로 나가면 해의 위치 말고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무엇보다도 일본은. 

견당사 남로 항로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기에는 이 항로를 오가는 배 편수가 너무 적었다. 

견당사의 파송 간격을 보면 짧게는 1-2년 이지만 길게는 15년에 한번 보내는 경우도 있어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 망망 대해로 나가는 꼴이라 실패 확률이 무지하게 높았다.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서기 804년의 제16차 견당사였다. 

이 견당사는 원래 803년에 보내려 했는데 도항에 실패하고 1년 후 다시 파견한 것인데, 총 4척의 배를 보냈다. 

그런데 4척 중 망망대해에서 한 척은 침몰하고 다른 한 척은 실종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 확인되었다), 결국 중국에 가 닿은 것은 4척 중 2척이 전부였는데... 

제16차 견당사 항해로. 쿠카이空海와 사이쵸最澄는 같은 견당사의 다른 배를 탔는데 중간에 헤어져 완전히 다른 곳에 닿았다. 나머지 두 척은 중간에 실종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두 척도 하나는 양자강 하류, 또 하나는 복건성 지역에 표착하였다. 말이 좋아 항해지 중국에 도착한 두 척도 중간에 헤어져 각각 다른 지역에 도착한 것이다. 

파견한 4척은 중간에 모두 헤어져 각각 행동하여 다른 배의 상황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쨌건 중국에 가서 닿았던 것이다.

이쯤되면 항해라기 보다는 난파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 모르겠다. 

더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 배를 타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원칙적으로 한반도 통일 후 중국과 왜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선편이 없어 중국을 들어간 일본의 견당사는 그 다음 견당사 배를 타고 귀국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견당사 배 편은 갈 때는 파송하는 사람을 싣고 갔다고 올 때는 귀국하는 사람을 싣고 돌아가는 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배도 성공률은 극히 낮았다. 

일본 율종의 개창자인 중국의 감진鑒眞[鑑眞, 688~763) 선사는 일본에 불법 전파를 목적으로 도항을 시도했는데 5번을 난파하고 마지막 6번째에야 일본에 가서 닿았다. 

갈 때 죽고 올 때 죽으니 견당사로 중국에 한 번 다녀온다는 것이 일본에서 얼마나 대단한 경력이 될지 알 수 있는 부분이고, 

견당사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항로였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으로 가다 난파한 감진. 감진은 6번째 시도에서야 일본 도항에 성공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