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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탕춘대성 홍지문弘智門 유래는? 홍지문에 대해서는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홍지문)'이라 편액을 써서 문루에 달았는데,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한북문漢北門이고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홍지문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영조 24년 3월에는 한북문 어제현판을 잘못 걸었다고 고쳐 걸라는 지시를 내리기 까지 합니다. 홍지문이라는 근거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래도 박정희시절 창작한 이름인 듯합니다. *** 홍지문은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한 탕춘대성에 난 성문이다.(김태식 補) 2019. 9. 29.
황윤석黃胤錫이 말하는 전라도 장성땅 아치실 이야기 by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아곡鵝谷〉 - 소곡(小谷), 아차실이라고도 하고 제곡(弟谷)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아찬곡(阿餐谷)이라 부른다.-鵝谷【亦曰‘小谷、아차실’, 亦曰‘弟谷’, 或云‘阿餐谷’。】 조상님들 거치셨던 이곳 아치실은 吾祖經行地깊은 산속 골짜기로 마을 아늑하네 山深里巷幽기수의 대나무엔 옛 그리움 남았고 淇竿留舊戀마당의 눈에는 유학한 자국 쓰였네 庭雪記曾游쓸쓸히 잔약한 손자가 여기 있나니 寥落孱孫在멀고도 아득하니 너무도 오랜 세월 蒼茫小劫悠해는 뉘엿뉘엿 말을 몰아 떠나면서 斜陽駈馬去가는 걸음걸음 자꾸자꾸 돌아본다 臨路更回頭 - 첨정부군(僉正府君)께서는 이씨(李氏) 집에 장가들었고, 취은부군(醉隱府君)과 구암부군(龜巖府君)께서는 기씨(奇氏) 집에서 배우셨으니 3세의 유적이 모두 .. 2019. 8. 22.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명나라 도독(都督) 진린(陳璘)이 주고받은 시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명나라 도독(都督) 진린(陳璘)이 주고받은 시 이순신이 도독 진린에게 준 시[寄陳都督璘韻] 賴天子勤恤 다행히도 천자께서 배려하시어 遣大將扶危 구원하라 대장을 보내주시었소萬里長征日 만 리 머나먼 길 원정 온 날이 三韓再造時 삼한 땅 다시 살아나는 때라오夫君元有勇 그대는 원래부터 용기 갖췄지만 伊我本無知 나는야 본래부터 사리 어둡다오只擬死於國 나라 위해 죽고자 할 뿐이거늘 何須更費辭 다시 무슨 긴 말이 꼭 필요하리 진린이 차운(次韻)하여 이순신에게 준 시[陳都督次] 1 堂堂又赳赳 위풍이 당당하고 더군다나 헌걸차신微子國應危 그대 없었다면 나라 응당 위험했으리諸葛七擒日 제갈량이 일곱 번 붙잡던 날이었고陳平六出時 진평이 여섯 번 계책을 낸 때였다오威風萬里振 그대의 위풍은 멀리.. 2019. 4. 25.
기정진(奇正鎭, 1798~1879), 입재기(立齋記) 입재기 立齋記 바야흐로 입재공(立齋公)의 두건, 신발이며 궤안(几案)이 남은 이 서재는 의심스럽고 판단이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찾아 왔으나, 평소에 의롭지 못한 자는 주저하며 들어오기를 꺼렸다. 서재가 서재다웠던 것은 공의 자태와 어묵(語默)에 달려 있었으므로 편액을 만든 일이 없었는데 더군다나 기문이겠는가. 공이 세상을 떠나고 30년이 지나 사자(嗣子)인 봉진(鳳鎭)은 그 서재를 비워두고 두어 마장[數帿] 되는 곳에 옮겨 살았다. 봉진의 아들로 양자로 나간 양연(亮衍)이 선조의 자취가 장차 없어질까 두려워 모든 것을 견고하게 만들고자 꾀하고자 해서 기와를 구워 초가지붕을 대체하여 오래가게 하고자 하였다. 약속을 정하고서 먼저 고(故) 옥류거사(玉流居士) 이삼만(李三.. 2019. 4. 11.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삼각산(三角山)〉 삼각산(三角山)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묶어세운 삼각산이 저 하늘을 꿰었으니 올라가면 북두성 견우성 딸 수 있으리 봉우리들 비와 구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만세토록 편안케 할 수 있다오 束聳三角貫太淸, 登臨可摘斗牛星. 非徒岳岫興雲雨, 能使東方萬世寧. [해설]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살 때 세종이 불러 삼각산으로 시를 지으라고 하자, 지었다고 전하는 시인데, 그의 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제신(李濟臣, 1536~1584)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청강선생 시화(淸江先生詩話)〉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13 〈문장부(文章部) 6 동시(東詩)〉에 수록되어 전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는 김시습의 작품이.. 2019. 4. 9.
추국안推鞫案에 보이는 이두자료 이두 정리(推鞫案을 중심으로) ※원문 뒤의 숫자는 추안 · 국안의 원문 쪽 수를 가리킨다. 加于더옥(더우여, 더욱) : 더욱, =尤于. 更良가새아 : ①다시,“同日 吉詠更推白等 蘇直長往來疎數 及云節奴豆應乞應伊等所在處是沙餘良 崔九翼旣是云節之九寸姪 則矣身果幾寸親是喩 幷以更良直招亦 更推敎是臥乎在亦”116. 庫 : 곳(군데),“楊州倭陣十二處乙 日日相戰乙仍于 同倭陣七庫 撤入京城” 敎味이산맛 : ①이신 뜻, 하신 뜻, “時未娶妻 又無家舍奴僕爲有去乎 相考施行敎味招辭是乎所 牒報是白齊”121. 敎味白齊이산맛삷제 : 하소서.“他餘事段 專亦知不得是去乎 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吉云得”119. ①이러하온줄로 아뢰옵니다.“ 敎事이산일 : 하소서, 하십시오. “其間終始曲折乙良 來此各人等良中 推問爲白在如中 可以詳知是白去乎 相考施行敎..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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