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6 내가 쏜다 요즘도 승진하거나 영전하면 한턱 쏜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새로 관직에 임명되면 인사, 부임과 관계있는 각 관부의 서리 등에게도 음식물을 내려주었고, 그것을 행하行下라고 했다. 첨부한 문서는 5대조께서 홍문관弘文館에 부임했을 때 그 기념으로 어느 군사軍士에게 음식물 값 3전錢을 내려준 문서다. 寺洞 玉堂拜辭軍士壹名處食物上下事 行下[署押] 三戔 (소장자 : 가친..단 모 공공기관에 기탁한 상태니 도둑님들 우리집에 와도 없음!) 2020. 1. 22. 팔고조도八高祖圖, 족보의 허실로 가는 바로미터 중학생이던 때 를 그려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접할 자료가 많지 않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였다. 지금 하자면 제대로 그릴 수 있을 듯한데, 그럴 의지가 없다. 선인들은 제대로 된 팔조고도를 그리고 싶어했지만,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국왕의 팔고조도도 모계쪽이 제대로 그려지는 일이 많지 않다. 팔고조도를 그려보면 족보의 허실을 금방 알게 된다. 첨부한 사진은 노사 기정진 선생 수고본 표지와 그에 실린 정무공貞武公 현암眩庵기건奇虔(1390~1460) 선생의 팔고조도다. 장성 아치실 행주기씨 종가 소장본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선생이 직접 만든 가승家乘이다. 대동보 수준이다. 《노사집蘆沙集》 권17에 시씨가승서奇氏家乘序가 수록되어 있으니, 그 서문이 말하는 책 전체.. 2020. 1. 19. 조상들은 무엇을 비누로 썼을까 요즘이야 흔해 빠진 게 비누라서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컬슨은 한 번 쓰면 쓰레기통에 휙 내던지는 지경이다. 전근대 시대 비누는 녹두로 만든 비누[비루飛陋]였다. 언제부터 녹두를 비누 원료로 썼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5, 16세기부터는 일반화했었던 듯하다. 그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비조肥皂라는 것이 기원전후부터 사용되어 명나라 초기까지 기록에 빈번하게 나오는데, 이것을 사용한 듯하다. 고급품은 향비조香肥皂라고 하여 침향이나 사향을 첨가하기도 했다. 주원료는 쥐엄나무[皂莢] 열매껍질이나 무환자나무[无患子, 肥珠子] 열매껍질이었다고 한다. 한번 실험해 볼 일이다. 옻올라 고생한 나 빼고..... *** 이런 소개에 여러분이 아래와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 오줌이나 잿물도 있었지요 ▶ 외할머니 .. 2020. 1. 17. 전통시대 단위어 계속 수정 보완합니다. ** 작勺이 문서에는 '夕'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작으로 읽는다. ** 전錢이 문서에는 '戔'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錢이다. ** 주지 같은 경우는 단위어 사전에 나오는 것과 고전에 나오는 것을 대조하면 정확하지 않다. ** 동同은 올의 굵기, 옷감의 종류, 관할이 호조냐, 병조냐에 따라 다 달라서 어느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밖에 기와는 눌訥이 쓰이는데, 이것도 몇 장인지 정리가 안 된다. 2020. 1. 13. 고전에 보이는 곡물명 ** 계속 수정 보완할 예정임 2020. 1. 13. 지도로 남은 조선후기의 장성부 1856년(철종 8)~1858년 장성부사長城府使를 지낸 한필교韓弼敎(1807~1878)의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중 장성부長城府다. 내용 중 오자誤字가 몇 곳 있으니, 예컨대 객사客舍의 등산관登山館은 오산관鰲山館의 잘못이고, 삼문산三門山은 삼성산三聖山의 잘못이다. 이는 18세기에 그린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의 장성부다. 둘을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2020. 1. 2. 이전 1 ··· 39 40 41 42 43 44 45 ··· 4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