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노년의 연구1957

에도시대 학문이 분석되어야 실학의 견적이 나온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에도시대 학문사가 제대로 분석되어야 (난학 포함) 우리나라 실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견적이 나온다. 이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성리학의 황혼에 해당하는 다산이 졸지에 근대적 사상가가 되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다. 실학의 정확한 역사상 포지셔닝은 에도시대 학문분석이 끝난 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조선후기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2024. 9. 8.
한국과 일본- 근세 지식인 사회의 구조 이건 필자가 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는데, 현대 한국과 일본의 학계 수준차는 단순히 20세기 이후 한국이 식민지도 떨어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1700년대 이후, 18세기 부터 이미 한국과 일본은 지식인 사회의 수준은 현저하게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학계는 서구학계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국은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의 구조, 일본은 에도시대 지식인 사회의 구조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한국학계에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학자의 사회참여의식"과 "자리 좀 잡았다 싶으면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풍토"다. 이 행태의 기원을 찾아보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2024. 9. 7.
한국과 일본 학자의 차이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라 외국의 교수 친구들을 만나도 뒷담화는 있다. 아무래도 서로 외국인 간의 이야기다 보니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잘 나오지 않는데조금 친해지면 인류 본연의 속성, 뒷담화는 어느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작렬한다. 나오는 이야기 중에 누구누구는 굉장히 폴리티컬하다던가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가 들어보면 그건 폴리티컬한 것도 아니다. 아예 정치판 들어가서 국회의원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이리저리 만나고 다닌다는 건데 그런 걸 폴리티컬하다고 하면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은 99.9% 폴리티컬이다. 매번 총선만 하면 어제까지 멀쩡히 대학교수였다는 사람들이사회에 큰 기여하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건 폴리티컬을 넘어 뭐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 각설하고-. 유심히 한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을 관찰.. 2024. 9. 7.
60세 이후 공부를 계속하는 법 아래 기준에 맞는 것만 남기고 다 쳐내야 한다. 1. 60 이전까지 해온 공부와 연결이 끊어지면 안된다. 60이후 잘해봐야 15년 정도 제정신으로 공부하는 것인데, 그 와중에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면 도달하는 점은 뻔하다. 딱 뭔가 나올만 하면 죽거나 공부 더 할 만한 상태가 안 될 것임. 2. 본인에게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본인에게 재미있는 공부만 남기고 그동안 의무감에서 해온 공부, 이런 것은 다 날려야 한다. 재미도 없는 건 읽는 이들도 곤혹이지만, 본인도 더이상 못하기 때문이다. 3. 연구지원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해야 60이후에는 어떤 연구지원도 없을 것이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도 혼자서, 보고도 혼자서 한다고 각오해야 한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 60세 이후 공부.. 2024. 9. 6.
일본사에서 바라본 한국사, 그 유산은 청산해야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한국사를 일본사에서 보는 입장이 은연 중에 우리에게 파고 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 필자가 예를 든 잡곡농경에 대한 우리의 시각. 그 시각 상당 부분은 일본사에서 쌀농사와 잡곡농경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받았다. 알다사피 중국은 잡곡농경에 대한 비하, 도작농경에 대한 찬상이 있을 수가 없다. 잡곡농경은 황하문명의 기반이며, 양자강 유역의 도작 농경은 그 지역 고유문화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을지언정 화북의 잡곡농경보다 우월하다거나 고도의 농경이라 우길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독 쌀에 대한 찬상, 잡곡에 대해 우습게 보는 우리의 시각은 일본의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이러한 시각에 따라 잡곡농경을 저열한 초보적 농경으로 보는 시각이 우리에게 아직도 큰 .. 2024. 9. 1.
번역본 찬미 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서는 번역본을 보지 않았다. 반드시 원서를 구해 읽었다. 전공서적뿐 아니라 이보다 조금 가벼운 교양서도 마찬가지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쓴 책의 경우 해당 국가 원서를 구해 읽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번역본을 믿지 못했던 탓이 크다. 최근에는 이런 습관이 바뀐 것이 이제는 원서를 구해 읽을 때의 팽팽한 긴장감이 부담이 된다. 조금 가볍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데는 역시 모국어 번역본이 가장 제격이라. 그러다 보니 번역 수준을 따져 어렵사리 소문이 좋은 번역본을 구해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국내에서 야마오카 소하치와 시바 료타로 번역에는 박재희 씨 번역이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심각한 오역이 많은 것도 알고는 있는데, 책의 필체가 원.. 2024. 8. 3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