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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1957

1920년대의 이병도 이병도 선생은 일전에 한 번 살펴 본 바 있으나 그 내용을 전제하고 좀 더 보강하여 자세히 적어본다. 선생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했다. 1912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에 입학해 3년 과정을 마쳤으며, 이어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 고등예과(高等豫科)를 거쳐 1919년 문학부 사학급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를 졸업했다.요약하면: 한성보광보통학교-중동학교-보전 법률학과 (1915)-와세다대 고등예과-동 문학부 사학 및 사회학과 졸 (1919)이다. 중동학교는 고보 (중학) 졸업이니 보전 입학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이어 와세다대 고등예과를 들어갔다고 한다. 선생은 보전 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같은 학력을 얻었기 때문에, 예과를 들어갈 .. 2025. 9. 13.
일제시대 나오는 조선인 업적은 모두 총독부 공인가 일제시대에 대한 우리의 역사학적 클리셰가 수탈이다 보니 일제시대 조선인이 만들어낸 업적에 대해서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시대에 조선인들은 모두 수탈에 신음하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일제시대에는 당연히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그것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주 조직적으로 있었다. 단순히 감정상의 차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차별에 대한 저항을 생각하자면 대개는 독립운동이나 동맹휴학등만을 생각하는데, 차별을 뚫고 놀라운 업적을 만든 사람도 많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례로 손기정만 생각하는데 각 분야에서 다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세계에 대한 소식은 충분치 않지만 조선인들에게 계.. 2025. 9. 13.
두계 이병도의 등장: 1923년 1923년에는 동아일보에 두계 이병도 선생의 "조선사개강"이 연재된다. 이것이 아마도 두계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사론을 발표한 첫 번째가 아닌가 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1923년 동아일보에서는 무려 1면 다단기사로 두계의 사론을 싣기 시작,총 60여 회를 연재했다. 두계가 1896년 생이니 이때 나이 서른도 안 되었던 셈이다. 1920년대 문단과 학계의 전면에서 활약한 이들은 대부분 그 정도 나이였다고 본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이광수도 1892년 생으로 두계보다 4살이 많다. 따지고 보면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인데, 그 앞에 이런 분야에서 신풍조를 받아 일할 이가 워낙 없다 보니 대략 1890년 생들이 1920년대에는 벌써 전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25. 9. 13.
도전의 시대 1920년대... 말로리와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라리와 텐징의 1953년 초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대한 등정 시도는1920년대에 이미 본격화했다. 20년대 산악 등정의 대표 주자 격이었던 말로리는 1920년대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끌었다. 1921년, 1922년, 1924년 세 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했는데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원정인 1924년 조난하여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하였다. 말로리가 죽기 전 에베레스트 등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등정하고 하산 길에 조난했다는 주장도 있고, 등정에 실패하고 조난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시신은 2007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 된 후에도 그의 등정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2025. 9. 13.
아멜리아 에어하트, 여성비행사가 되다 (1923년) 미국의 스미스소니안 항공우주박물관에 가면아멜리아 에어하트는 여성 비행사로서 거대한 역사적 심벌이다. 1923년에 여성비행사가 되었고1928년에 대서양 횡단비행을 했다. 린드버그가 1927년에 대서양 횡단을 처음해냈고, 1928년에는 아멜리아 에어하트Earhart in her first training plane가, 그리고 1930년대 이전에 이미 대서양을 가로지르는항공우편의 경험을 그린 생 택취페리의 소설이 1931년에 나왔으니이 시기 항공산업의 발전이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대서양 횡단을 한 번 더 했고, 1935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1936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맥시코시티까지 날았다. 1937년에는 세계일주 비행을 시도하다 실종되었다. 한국의 여성 비행사는 권기.. 2025. 9. 12.
세계사에 올라탄 안창남 (1923년) 생택쥐페리가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며유럽과 남미를 횡단하던 1920년대-. 조선에도 비행기를 조종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조종사들 중에 안창남은 가장 빨리 조종면허를 획득한 사람들 중 하나로1923년에는 "안창남군 고국방문 비행후원회"까지 조성되었다. 회비는 통상회원은 2원 이상, 특별회원은 10원 이상, 명예회원은 50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지만 동아일보에는 지속적으로 후원회 광고가 계속 실렸다. 1920년대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세계사 흐름을 엶심히 쫒아간 젊은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안창남의 프로필을 보면, 휘문고보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자동차 학교에서 2개월간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아카바네 비행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조법을 익혔..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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