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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422

관찰이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뭐 현대과학은 실험에 굳게 기반하고 있지만 굳이 실험까지 가지 않더라도 관찰에 입각한 겸험주의에만 뿌리박아도 그것은 과학에의 첫발을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식물에 대한 그림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물에 비해정지상태의 식물은 관찰하기가 쉽다. 따라서 식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에 바탕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해당사회에 역사적으로 과학적 사고가 보편화하기 시작하는 징후다. 지동설을 누군가 주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면, 지동설의 할애비에 해당하는 주장이라한들과학과 근대적 사유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우리는 지동설을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근대적 사고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줏어 듣.. 2025. 5. 24.
제국주의의 주구라는 오타니 탐험대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오타니 탐험대가 서역 일대를 뒤져 훔쳐왔는지 사왔는지 모르겠지만 들고온 유물 중 일부가 있다. 이 오타니 탐험대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는오타니 탐험대는 19-20세기를 주름잡던 서구의 제국주의적 탐사여행의 끝물이라는 평가를 하는 걸 보는데, 물론 맞다. 오타니 탐험대는 그 이면에 제국주의가 되고 싶은 일본의 욕구가 추진제가 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오타니 탐험대가 1910년대에 이미 일본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서역을 누비고 있었다는 점-. 이 점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인도나 메소포타미아나 가 보면우리처럼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도 묵묵히 수십 년째 그곳 현장을 누비며 조사하는 일본학자들 아직도 있다. 이 양반들이 무슨 일본.. 2025. 5. 24.
시료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는 강자와 약자 동남아시아에서 뭔가 대단한 게 나오면이 지역 학자들은 손도 못대고 호주나 유럽으로 시료가 이동하여 그곳에서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료의 흐름을 유심히 보면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제국주의 시대 이래의 학문의 불평등의 주종관계를 엿볼 수 있다. 국제 학계에서 시료가 흐르는 방향은 절대로 강자에서 약자 쪽으로는 흘러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런 개발도상국 고고학자 중에는 시료를 쥐고 순순히 외국에 내주지 않는 빅가이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잘 아는 인도 고고학자 한 분도 그랬고, 이집트의 이름만 대면 아는 고고학자이 사람도 관련 고고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고집으로 유명하다.물론 이런 외고집이 때때로는 비난을 낳기도 하지만 이런 강단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당시 보호무역과 같은 역할을.. 2025. 5. 24.
불평등한 연구 관행 언젠가 한 번 쓴 것 같은데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국가간 연구관행은 전혀 대등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앞에 김 단장께서 쓰신 인도네시아 준설 연구. 동남아시아는 유럽인과 호주 사람들 앞마당이다. 가 보면 그런 연구자로 바글바글하다. 반면에 동남아 연구자가 유럽이나 호주에서 연구하는 것 봤는가? 이런 불평등한 연구관행과 기울어진 바닥은 아직도 전 세계를 지배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왜 한국 연구자들은 일본 연구를 제대로 못하는데 일본 연구자들은 한국을 맘대로 누볐는가.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인 거지다른 이유는 없다. 여기서 일본의 수준이 높았다던가 하는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은 우리가 바보라는 이유를 우리가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중국-. 70년대에 한심한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 2025. 5. 24.
[연구소식] 체질인류학회 심포지움 22일 대구에서 열린 체질인류학회 심포지움에서 발표가 있었다. 제목은 "역사학과 생물인류학의 대화"40분 정도 강의가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짧았다. 언젠가 밝힌 것처럼 60이후 학회 활동을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강연 이후 생각이 더 많아졌고, 졸업 이후 처음 다시 만난 대학동기생과의 조우도 기쁜 일이었다. 이비인후과 명의에 완숙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나이 60은 그런 나이인듯. 2025. 5. 23.
몇 세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백세시대니 뭐니 하지만, 의외로 아무리 찾아봐도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필자 같이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살까지 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데 대한 점이다. 아무리 뒤져봐도 경험담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몇 세인데 정신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던가 이런 것이 되다가 안 된다던가 이런 이야기가 의외로 거의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내가 90살인데도 아직 글을 쓴다거나, 80인데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거나 하는 이런 이야기를 묻는 게 아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 논문을 써내는데 그 한계가 도대체 몇 살일까 하는 점이다. 남들 읽을 때 딱하다 싶은 글을 써 내고는 죽을 때까지 연구한다는 그런 식의 마무리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쓰는 것이 ..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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