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노년의 연구1957 일제시대의 대학 전문부 1925년 당시 동아일보에는 위와 같은 기사가 나와 있다. 일본의 사립대생들이 모여 차별철폐를 외쳤다는 것이다. 무슨 차별 철폐일까? 바로 사립대 "전문부"에 대한 차별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전문부"는 무엇이관대 차별을 없애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 소식은 왜 조선의 신문에까지 실렸을까? 그 이유는 이 "전문부"가 조선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부는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전문학교, 대학예과와 동급 학교였지만, 정확히는 이와도 위상이 같지 않았다. 원래는 일본에서 전문학교를 대학령 발표 후 대학으로 바꿀 때 기존의 전문학교 학생을 새로 뽑는 대학생과 따로 교육하기 위해 두었던 것이 전문부인데이것이 전문학교 학생들이 다 졸업한 후에는 성격이 바뀌어 전문학교와 같은 교육과정으로 유지하되 .. 2025. 9. 17. 로버트 레드퍼드: Decent하고 Generous 한 미국에 대한 조사 로버트 레드포드는 요즘 세대는 잘 모를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설명은 요즘도 한참 주가를 날리는 브레드 피트가 사실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짝퉁이나 하위호환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는 말 한마디로 족하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Decent 하고 Generous 했던 미국의 상징이다. 필자 세대가 기억하는 미국이란 그런 이미지였고 영화를 만들어도 뭔가 다르고 민주주의를 해도 뭔가 다른 그런 나라였는데 요즘 하도 희안한 꼴을 많이 보다 보니 필자가 알던 미국은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세대에는 뭔가 좀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징하는 decent하고 generous 한 시대가 다시 돌아왔으면 한다마는그게 쉽지 않을 것 .. 2025. 9. 17. 을축년 대홍수가 덮친 1925년의 대기근 1925년은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기억되지만 이 해에 수해가 오기 전, 봄에 이미 조선은 극심한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당시 지면을 보면 연일 기근 소식이며 구황을 위한 각종 사회 캠페인이 펼쳐진다는 기사가 나온다. 대홍수는 이런 기근의 와중을 덮친 셈이 되겠다. 한참을 굶다가 이번에는 대홍수가 덮쳤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살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왜 대기근이 오는가? 조선에서 일본 쪽으로 미곡의 수출은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부터는 이출移出이라 불렀다) 항상 조선 쪽에 쌀 부족을 낳았는데, 이 당시의 기근도 이와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근은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산미증식계획이 일본 측에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불리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이.. 2025. 9. 17.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는 조선의 20년대 식민지시대 신문만 봐도 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조선의 20년대-.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다.반면에 들여오는 물건은 일본의 공산품, 그리고 미국 유럽 등의 공산품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공산품 간에는 서열이 있다. 미국 유럽 공산품이 일본 공산품보다 상위에 있으며 일본 공산품은 그보다 못하지만 조선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보호 무역 기조 등등으로 조선에서 판로를 찾았다. 아마 이 당시 돈의 흐름은 조선에서 쌀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의 공산품을 사서쓰는 방향으로 돌고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당시의 신문 기사가 채워지고 있었다고 본다. 면직물로 세계를 지배하고 설탕으로 무역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에서 그 식민지로 부터 면화와 사탕수수 원료를 공급받는 .. 2025. 9. 16. 출신이 다양한 구한말 관리들, 개천에서 난 용들 구한말 관리 중에는 물론 전통의 명가 출신, 혹은 정말 몰락양반이라는 잔반 출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자 출신, 중인출신, 그리고 모칭 유학 출신 등18세기까지도 제대로 된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던 사람이 상당수 들어가 있으며이들 중 일부는 당시 정계의 최정점에까지 올랐다고 본다. 그리고 이 구한말 관리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그대로 총독부관리로 넘어갔거나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선인 동향을 주도하는 재야의 계층으로 남았다. 일제시대 이미 최고학부까지 공부한 사람은 필자가 보기엔 거의가 바로 이런 인적 풀에서 나왔다. 이들은 정치적 동향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혹은 독립운동도 한 사람도 있겠고, 혹은 열심히 돈을 번 사람도 있겠으며, 혹은 아예 친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도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분.. 2025. 9. 16. 20년대, 여러 명이 말하던 민족개조론 춘원은 30년대 말의 행보로이전까지 소급해서 욕을 먹고 있는 측면이 강한 듯 한데,사실 춘원이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당시 (1922년)이 주장을 한 사람은 춘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있었음은 당시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예 특집기사를 만들어 여러 명이 연재하거나 아니면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결점, 고칠점을 이야기해 달라 하여그것을 정초의 신년 기사로 싣거나 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이 1922년에서 1925년 사이에 꽤 보인다. 아마 춘원처럼 30년대에 변절의 혐의가 생겼다면이 사람들도 덩달아 모두 소급하여 욕을 먹었을 것이로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양반들은 대개 춘원처럼 인생 마무리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 사회면은 하루가 멀다하고 독립운동하는 이들이.. 2025. 9. 15.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32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