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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152

나로서는 모든 걸 쏟아부은 직설 무령왕릉 무령왕릉에 현재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첫째 발굴비화..발굴단 일원인 조유전 선생이 일전에 이를 초抄한 적 있지만 이를 토대로 나는 2001년에 그 완결편 전초를 이미 선보였다. 작금 한국사회에서 통용하는 발굴 일화는 그때 15회 분량으로 정리한 내 기사가 뼈대다. 나는 발굴단장인 김원룡이 이 발굴을 자아비판했다 해서 그걸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외부에서의 진짜 충격을 그는 받은 적이 없다. 간담을 서늘케 하고 싶었다. 둘째, 설계자를 남조南朝 양梁나라 사람들로 확정했다. 이는 종래 梁官瓦爲師矣로 판독한 송산리 6호분 전돌 명문을 끌어엎음으로써 가능했다. 瓦는 어처구니없는 오독이었다. 나는 볼펜 똥으로 보아 그것을 쳐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문구는 양나라 관리를 .. 2023. 3. 26.
논문 같은 기사 기사 같은 논문 내가 모름지기 그리하지도 않았고 또 이것도 관련 기자질하면서 서서히 체득한 것이라 초반기에는 그리 철저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고학 발굴 소식에서 지번을 꼭 밝혀야 하는 이유를 나는 해당 유적 성격을 가늠하는 데 그것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 결정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당 유적이 바다나 강을 연접한 곳이라면 그와 연동하는 마을 혹은 건물일 것이요 그곳이 산상이라면 망루 같은 흔적일 수 있다. 그에 더불어 근자엔 지번 하나로 그 주변 환경을 한 눈에 조망하는 지도 서비스가 이뤄지는 중이라, 그 서비스엔 위성지도까지 포함하니 우리는 현장을 가지 않고서도 지번 하나 클릭함으로써 안방에서 주변 환경을 들여다 보는 시대를 산다. 그래서 반드시 지번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 나는 또한 해당 발굴을 시행한 조.. 2023. 3. 23.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진주 운석 페이스북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보니, 9년 전 오늘 2014년 3월 16일 이런 포스팅이 보인다. 고속도로 열나 밟아 서울 오는데 부장이 전활했다. 전국부에서 진주 운석 관련 기사 좀 써달란다는 내용이다. 이번 사안 난 실은 흘려버려서 모른다. 내 관할도 아니니 아돈기버퍽이었다. 한데 이런 전활 뒷좌석에서 듣던 아들놈이 신이 나서 진주 운석이 뭐니 실컷 떠들어댔다. 얘기인즉슨..진짜 운석이래? 90프로 이상 운석이라 했는데 진짜였구나? 아부지, 그러면 그게 우리나라 두번째야. 진주에선 두 개 발견됐데. 놀란 내가 니가 그걸 우째 그래 잘 아노 했더니 형은군 왈.. 아부지는 기자면서 뉴스도 안 보냐? 그래 임뫄, 안 본다. 하긴 그러고 보면, 어쩌다가 문화재를 담당하던 내가 당시를 떠들썩하게 한 진주 운.. 2023. 3. 16.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6) 철권통치자 이종철 그는 차우세스쿠였다. 그가 가는 곳엔 어김없이 절대왕정이 들어섰다. 그의 치하 국립민속박물관은 그의 말 한마디에 웃고, 말 한마디에 떠는 절대 왕국이었다. 공公이 곧 사私요, 사가 곧 공이었기에 시도때도 없이 쉬는 직원들을 불러냈다.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장인 천진기 역시 툭하면 주말에 호출을 받아 불려나갔다. 주말이면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는 이 철권통치자를 따라 조직 개편의 키를 쥔 행정자치부나 예산 편성을 주무르는 재정경제부 담당 사무관이나 국장 집을 찾아가서는 하염없이 문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후문에는 맘에 안 드는 직원들에게는 ‘조인트’도 깠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자기가 많은 기관이나 부서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직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 정성과 노력에는 혀를 내둘러 반란은 .. 2023. 3. 14.
원효의 선물, 덕동댐 적석목곽분과의 조우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만 2년에서 채 미치지 못하는 2017년 8월, 나는 해직 당시 근무 부서인 전국부로 복직했다가 2018년 4월 17일 문화부장으로 문화부에 복귀했다. 문화부장 발령 직전, 그러니깐 전국부 근무 시절인 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아마 휴가였던 듯한데(이튿날이 삼일정 공휴일이라 아마 연휴 엮어 휴가를 냈을 것이다.) 나는 경주에 있었으니 언제나처럼 사진작가이자 김천 고향 선배인 오세윤 형과 함께 경주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녔으니, 그날 어찌하다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마당을 장식하는 우람한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본래 있던 그 고선사지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그날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또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날을 증언하는 사진도 그렇고, 하도 비를 쫄딱 .. 2023. 3. 11.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유홍준을 대체한 최광식 시대의 개막(1) (1) 승승장구하는 최광식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문화유산계로 국한해도 권력이동의 신호탄이었다. 유홍준 시대가 저물고 최광식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내실보다는 이른바 보여주기형 치적 쌓기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둘은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한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꽤나 다르다. 그 스타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속성 일람표로 정리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유홍준은 진위 확인은 불가능하나, 들리는 말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교체가 확정된 시기에도 연임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고 알지만, 주변에서는 모두가 그리 말했다. 이는 무엇보다 당시 이명박 예비 정부 실세로 통하던 이재오와 친분이 보통 이상이인 점..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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