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8 2009년 여름 세비야와 세계유산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보기에서 퍼온다. 이 사진과 아래 첨부사진을 전재하면서 내가 적기를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Being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at the 33rd World Heritage Committee Held at Seville, Spain on June 27th, 2009 라 했으니 200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던 그 순간을 촬영한 장면 중 하나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당시 이건무 문화재청장이고 그 왼쪽이 외교부 어느 담당 국장이셨는데 성함은 까먹었다. 저 조선왕릉 등재 때 한국 취재진으로서는 내가 유일하게 현장을 지켜 보며 관련 기사를 썼.. 2025. 2. 23. 광저우 아시안게임 전날, 라오스에서는 문화재 혁명이 있었다 Luang Prabang and the Mekong River, november 11th, 2010곧, 2010년 11월 11일 루앙프라방이다. 라오스다. 메콩강이 관통하는 그 강변 프랑스 식민지시대 어느 고택이다. 거대한 메콩강은 강물이 유유히 흘렀다. 이날 라오스 메콩강이 왜 중요한가?한국문화재사에서는 위대한 날이다. 문화재가 마침내 ODA에 명함을 내밀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이전 문화재는 ODA에 끼지 못했다. 저 이튿날 중국 광저우에서는 아시안게임이 개막할 예정이었다. *** related article *** 한국 문화재 ODA 사업의 시작(4) 누군가는 느닷없이 시작했어야 할 일 한국 문화재 ODA 사업의 시작(4) 누군가는 느닷없이 시작했어야 할 일문화재가 ODA에 첫 발을 담그게.. 2025. 2. 22.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2] 극단의 시대 저 학술대회가 표방한 슬로건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은 김창겸 형이 밀어부친 제목이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저 제목 실은 마음에 안 들었다.왜 굳이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한정하느냐 하는 불만도 없지 않았고, 저리 되면 문중 냄새가 짙게 나는 까닭이었다. 이 불만은 설계 단계에서 내가 우회로 표출은 했지만, 그러고는 말았다.형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더구나 고향 선배이고, 당시 학회장이었는데 내가 더는 어찌할 수는 없었다.그런 점에서 보면 형은 어쩔 수 없는 김해김씨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한다. 아무튼 제반 준비를 거쳐 학술대회를 공지하게 되었으니, 당시 학술대회 안내문이다. 보다시피 안내문은 내가 작성했다. 현대의 저명한 어떤 역사가는 20세기를‘극.. 2025. 1. 26.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1] 돈과 조직 이것도 한 시대 편린으로서, 그리고 김태식 궤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해두어야겠다. 보다시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주최하는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내건 학술대회가 열렸거니와 이때는 김창겸과 김태식의 전성시대였으며, 이네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라사학회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신라사 전문 연구를 표방한 신라사학회가 김유신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문제적 인물이었으니, 그런 말만 무성하다가 결국 신라사학회가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창겸형이랑 누가 그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런 역할 분배가 이뤄졌으니, 형은 조직과 사람 끌어오기를 했고, 나는.. 2025. 1. 26. 기자들이 정식 채용하라 발벗고 나선 어느 공무직 기록을 보면 이건무 선생은 2003년 3월 31일 이래 2006년 8월 1일까지 대략 3년 남짓 제8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했다. 이 시절 이야기 한 토막이다. 그때 공직사회에 이상한 바람이 불었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채용과 관련해 일대 변화가 있었다. 이 일로 당시 박물관에서 홍보 업무를 전담하던 홍선옥 선생 처지가 실로 곤란해졌다. 이 분 신분이 묘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공무원이라 하지만, 실로 묘한 공무원, 그걸 공직사회에서는 뭐라 하는데, 공무직이든가? 암튼 그렇게 되어서 정식 공무원으로 전환이 시급했다. 홍 선생은 기록상으로 보면 1982년 국립박물관에 입사했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발을 디디고선 오직 홍보 업무를 전담하면서 박물관 하면 곧 홍선옥을 연상할 정도였다.. 2025. 1. 3. 이른바 리즈 시절? 암튼 젊은 시절 몇 컷 나라고 머리 까만 시절, 젊은 시절이 없었겠는가?나도 한때는 젊었고, 한때는 혈기방장한 시절이 있었다.6년 전 오늘, 집안을 개비하다 쏟아져 나온 사진 뭉치를 물끄러미 봤다.망실한 줄 안 앨범까지 튀어나왔다.99년 6월이다. 이들 사진 잃어버렸다고 동행자들한테 수소문까지 했더랬다.첫 사진 주인공은 믿거나 말거나 경향 도재기다.국민 손수호 조선 김태익 선배는 이미 퇴직했다. 이유범은 문화재청 퇴직해서 전통문화연수원 재취직했다가 그것도 끝났다. 다들 끝났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베토벤 무덤은 생각난다. 1999년 독일 에센에서 한국 국보 명보明寶 전이 있었으니, 저들은 그 취재를 빙자해 한국 기자단 떼거리 해외연수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돈 시절이다. 당시 독일을 출발해 스위스 오.. 2024. 12. 31. 이전 1 2 3 4 5 6 7 ··· 6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