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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04

[마왕퇴와 그 이웃-19] 우리 청동기시대의 비단 옷 마왕퇴 소사단의의 기술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와 일본의 비단 옷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전통시대에 양잠과 비단 옷 짜는 기술을 비밀에 붙였다고 한다. 대륙에 통일왕조가 등장한 이후에는 줄곧 그런 경향이 있었던 모양으로 [대당서역기]에는 그 장면이 이리 적혀있다. "호탄 사람들은 뽕과 누에를 원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호탄왕은 중국에 혼인을 청했고 신부에게 뽕과 누에를 가져와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남몰래 뽕과 누에 종자를 구하여 자신의 왕관에 숨겨 호탄에 가져왔다."비단이 가지고 있는 고급 직물로서의 선입견, 그리고 중국이 주변에 전파를 원하지 않았다는 위와 같은 기록 덕인지 한반도의 경우 양잠과 비단의 ..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8] 소사단의素紗襌衣 마왕퇴에서 나온 유물 중에 소사단의라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마왕퇴를 다루는데 있어 필자는 의학과 과학 쪽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이며 문화적 부분은 김단장께서 풀어갈 것인데, 이 소사단의를 필자가 다루는 이유는 이 옷이 자연과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마왕퇴 미라가 보관된 호남박물원 (전 호남성박물관) 홈페이지를 보면위 그림과 같이 소사단의가 메인 화면에 등극해 있을 정도의 대단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 점은 길이가 128센티, 소매 길이가 190센티인데 무게가 겨우 48이고 다른 한점은 49그램이었다. 옷 두 벌의 무게가 합쳐서 100그램이 안되었고 소매와 목둘레 동정을 떼버리면 겨우 25그램이었다. 라고 하여, 전한대에 이미 중..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7]: 회곽 구실을 한 백고니, 청고니 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이 회곽을 쓴 묘를 회곽묘라 부른다. 주자가례를 보고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고, 주자가 그 만드는 법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유심히 주자가례의 주소를 보면 주자 생전에 이미 강남 땅에는 회곽묘가 만들어지고 있던 것을주자가 이 무덤이 사대부들의 무덤으로 쓸 만하다 하여 현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대 무덤 중에는 회곽묘가 발견된 바 있어 주자가 이 무덤을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며 강남 지역에 꽤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무덤임..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6] 마왕퇴를 증오한 강청 사인방은 마왕퇴와 상극에 있다. 처음 마왕퇴에서 어마어마한 전한 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단 보고가 올라간 당시, 이 보고를 받고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태워버리라고 일갈한 것은강청을 위시한 사인방이었다. 전한 시대 무덤이라고 해도 결국 반동적 지주계급 유산일 뿐이니문화혁명의 와중에 있는 중국으로선 그딴 것 보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공자묘도 작살내는 판에 마왕퇴를 왜 보존하겠는가. 이렇게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뒤집어 버린 건 당시 총리 주은래였다. 주은래와 곽말약은 마왕퇴 발굴이 진행되는 동안 이 발굴이 공격받지 않도록 계속 보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 역시 사인방에 의해 호시탐탐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마왕퇴를 보호하는 일은 아무리 주은래와 곽말약이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 2025. 3. 1.
[마왕퇴와 그 이웃-15] 조사단이 두려워한 홍위병 앞에서 홍위병과 마왕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마왕퇴 발굴이 있던 1971-1974년 연간에는아직 홍위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여전히 중국 정계를 휘두르던 사인방은 심지어는 주은래와 곽말약까지도 수정주의자 내지는 주자파 딱지를 붙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발굴단은 주은래 재가를 받아 마왕퇴 발굴을 시작했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역시 홍위병이었다. 이 때문에 발굴 당시 채증한 카메라 필름은 모두 셋으로 나누어하나는 중국과학원, 다른 하나는 호남성박물관, 또 하나는 호남성 도편사 세 군데에 따로 보관하게 했다. 말하자면 우리 조선왕조실록처럼 여러 군데 나누어 보관하여 한 군데가 홍위병 습격으로 기록이 사라져도 다른 두 군데만 온전하면 복구가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마왕퇴 발굴단이 가장 .. 2025. 3. 1.
호좌조가고虎座鸟架鼓, 호랑이가 바치고 새가 비벼주는 남방 악기 몇몇 분이 이 유물이 뭐냐 여쭈어 새삼 소개하고자 한다. 호좌조가고虎座鸟架鼓라 해서 노자 각종 판본을 비롯해 그 유명한 선진先秦시대 죽간을 마구잡이로 쏟아낸 중국 하북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 곽점 1호 초묘 郭店一号楚墓 라는 무덤에서 나왔다. 이 무덤 만든 시점을 대략 기원전 300년 어간으로 보니 그 무렵 남방 초나라 문화 유산이 되겠다. 먼저 호좌조가고虎座鸟架鼓라는 명칭을 풀어야 그 의미가 확연해진다.이 말은 호좌虎座/鸟架/鼓라, 호랑이 모양 받침에다가 새 모양 걸대를 갖춘 북이라는 악기가 되겠다. 실제 저를 보면 쌍호雙虎, 곧 호랑이 두 마리가 받침대로 서고, 그 양 옆에는 쌍조雙鳥, 곧 새 두 마리가 버팅겨 주면서 북을 보호한다. 세상이 참 요상해서 이제는 영어로 표현해야 그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오는..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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