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60 [마왕퇴와 그 이웃-64] 할머니 사망 원인은? 부검의 결과는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망원인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미라에서도 마찬가지로서사망원인이 추정된 경우는 거의 부검을 한 케이스였다. CT 등 비파괴적인 검사가 요즘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역시 부검을 따라갈 수 있는 검사법은 없다 할 것이다. 다만 부검은 역시 어쩔 수 없이 손상을 남기기 때문에 부검에 의한 학술상의 이점이냐, 보존이냐에 대한 부분은 미라 연구가 시작된 이래 항상 계속되어 온 갈등이었고국제적으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없다. 아무튼 각설하고-.마왕퇴 노부인에 대해서는 그 사망원인이 부검 전부터 설왕설래 했었는데 부검 후 그 원인에 대해 보다 객관적 증거가 여럿 잡혔다. 부검 후 연구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연구자의 숫..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3] 부검 전말 (2) 장기까지 살아남은 시신 마왕퇴 연구 기록을 보면사진 촬영이나 엑스레이 촬영 등 당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기계가 워낙 낡은 탓에 충분한 퀄리티의 결과를 뽑지 못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사진촬영은 사진기가 빛이 들어가 필름을 망쳤다던가 엑스레이 기계가 너무 고물이라 창피할 정도라는 이야기 등 따라서 부검 당시 상황은 안에 아무것도 없겠지 하고 짐작하고 부검했다가 내부에서 잘 보존된 장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었다. 뇌에서는 뇌와 함께 뇌막이 확인되었다. 현장에서 찍은 엑스레이가 너무 엉망이라내장은 다 썩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열어보니 완벽한 형태의 내장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부검후 열린 회의의 회의록에 잘 남아 있다. 회의에서는 "우리가 예상한 ..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2] 부검 전말 (1) 총리 재가 사흘만의 개복 주은래가 미라 부검을 사실상 재가를 한 시점이 12월 10일이었는데, 부검을 위한 준비는 1972년 12월 11일 개시되었다. 이 당시 부검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검 전에 먼저 X ray를 찍고 사진과 영화를 촬영했다. 12월 14일에는 해부를 진행할 인원이 확정되었고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고 한 다음 당일 바로 부검에 들어갔다.주은래가 재가 한 후 3일만의 일이었다. 부검 때 관찰 기록은 현재도 자세하게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여기 다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 마왕퇴 부검 기록을 보면조선시대 미라에 대해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필자의 경험상 매우 비슷한 결과를 그들이 얻었다고 판단한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미라의 보존상태와 마왕퇴 미라의 보존상태..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1] 팽륭상의 계획 팽융상은 마왕퇴를 조사할 당시 조교수였다. 정확히는 "조교수"에 해당한다는 것이 맞다.왜냐하면 문화혁명 와중에 중국에서는 교수 직급을 몽땅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팽융상은 이 당시 언론에 "조교수"라고 소개되었는데 이는 해외언론에 소개하기 위해 "조교수"라는 직급을 조사 당시 부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류의 직급폐지는 중국이 공산화한 후 대학 말고도 시도된 적이 많다. 예를 들어 인민해방군은 병사들의 평등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계급을 모두 없애고 운영한 적이 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인민해방군은 "계급장을 떼고" 참전한 것으로 안다. 물론 당시 중국의 참전은 어디까지나 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아니라 의용군의 참전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계급장을 붙일 필요가 없었던 까닭도 있겠다. 젊은 팽융상은 마왕퇴 부..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0] 호남의대의 부검 요청과 승인 1972년 11월 작성된 호남의과대학 혁명위원회 명의의 보고서를 보면 마왕퇴의 조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고 있다. 당초의 조사에는 의학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연구 보고서로 작성하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부검은 하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 따라서 내부 조사는 현재 수행하지 못한 상태다.우리는 시신의 내장 기관에 대해, 두개골을 절개하고 흉복부를 해부해 뇌와 내장기관을 적출한 다음 몸 속에 소독 약품을 채워 넣고 방부처리한 후 다시 봉합해 시신의 외형을 완벽히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처리는 장기적으로 시신의 외향을 보존하는데 더욱 유리하다. 이 보고서는 10월에 이미 올렸지만 아직 허가를 받지 못했다.시신은 이미 점차 마르고 있다. 이에.. 2025. 3. 22. [마왕퇴 spinoff]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무령왕릉 만행 나는 작금 신동훈 교수님과 함께 세계 미라를 정리 중이라, 그 와중에 지금은 마왕퇴 미라에 집중하거니와 그것이 발굴된 때가 1972년이라, 그 직전 1971년 무령왕릉 발굴, 그리고 같은 1972년 일본 고송총高松塚 다카마쓰즈카 고분 발굴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거니와 이미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에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기적으로 출현한 무령왕릉을 하룻밤만에, 것도 거의 남기지 아니하고 쏵 걷어버린 김원룡 발굴에 다시금 분노가 치솟아 올라 뒷목이 뻐근하다. 이를 김원룡 스스로는 내 머리가 돌아서 그리했다 했지만, 그래서 사과 혹은 사죄를 했다 했지만 그런 사죄가 나온 시점이 90년대 들어와서야였고 그 이전에는 그런 의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시 우리 고고학 수준이 그것밖에.. 2025. 3. 16.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