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04 [마왕퇴와 그 이웃-31]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마왕퇴는 복잡한 역사적 사실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측면이 뒤얽혀 있다. 여산 진면목은 산 밖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마왕퇴를 발굴하던 그 시점 자체에 대해서는 문화혁명을 빼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성격으로 비화할 확률이 높았다. 그냥 문화유적과 유물은 그렇게만 봐 주면 될 것을 이에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워 이 무덤은 반동영주계급의 소산이요, 마왕퇴 미라는 호의호식한 여편네 정도로 폄하되어 원래 같으면 홍위병 습격으로 몽땅 태워질 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왕퇴 발굴이 그렇게 막장으로 가지 않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과를 내며 종지부를 찍은 것은어쨌건 그 미친 세상의 와중에도 제대로.. 2025. 3. 5. 대 몽골전 꺾기도 사망하신 남송 부부 미라 《探索·发现》 20230114 茶园山南宋古墓之谜(上)https://tv.cctv.com/2023/01/14/VIDEz3orXS4BUJSIzzspQ4V0230114.shtml 《探索·发现》 20230114 茶园山南宋古墓之谜(上)本期节目主要内容:1986年8月1日,福州火车站附近茶园山工地施工现场,一座古墓横空出世,一男一女两具保存完好的古尸就藏匿在这座小小的山包里面。考古表明这是一座南宋时代的墓葬。七tv.cctv.com 1986년 8월, 복건성 복주福州 다원산 초등학교茶园山小学에서 운동장을 건설하던 중 700여 년 전 남송南宋 시대 부부를 함께 묻은 무덤 하나가 우연히 발견된다. 부부는 하나의 봉분 아래 각각 관을 달리해서 안치됐는데 나중에 밝혀졌지만 남자 쪽 관이 유난히 무거웠다.이를 조사하던 사람들이 살짝 치켜든..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30] 남방 초나라의 자연 환경 앞서 서한시대 군현의 인구밀도에 대한 지도를 위와 같이 포스팅 한 바 있거니와 이 지도에서 눈에 띄는 바는 역시 전국시대 초나라가 위치한 남방의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시 남방의 상황은 어떠했던 것일까? 이 정황을 짐작케 해주는 역사 기록이 있다. 당시 양자강 유역은 거대한 사파리 셀렝게티 공원이나 다름 없었다. 양자강 중류에는 운중대택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는 당시 남방 귀족들이 자주 사냥을 나갔던 모양으로 그 모습이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墨子·公輸》: 「楚나라에는 雲夢大澤이 있으니 犀, 兕, 麋, 鹿이 가득하다」《戰國策·楚策一》: 「楚王이 雲夢大澤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말 네 필을 묶은 수레 千乘에 깃발은 하늘을 덮었고 들불이 일어나 구름무지개 같은데 兕와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9]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최근 포스팅하는 김 단장님 글을 보니 이전에 게시한 아래 글은 조금 숙고가 필요해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겸 약간 고쳐 다시 포스팅한다 [필자 주].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들었다. 마왕퇴 한묘도 베리에이션의 측면에서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야 한대 목곽묘에 당..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8] 부검을 시행한 이유 앞서 마왕퇴 미라에 대한 부검을 곽말약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마왕퇴 의학조사는 그 목적이 과학적 연구도 있었겠지만일차적으로는 이 미라의 보존에 있었다. 당초 미라가 발견된 후 이 미라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아니 의견이 엇갈린 것이 아니라 마왕퇴 보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여 마왕퇴 한묘를 조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봉건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주자파라는 주장이 문혁의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서 현지 고고학자들이 상부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의를 중앙 정부에 했을 때, 이 보고를 먼저 접한 사인방의 일파는 미라는 보존의 가치가 없다.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 2025. 3. 4. [만성한묘满城汉墓] 금루옥의金縷玉衣, 고대 중국이 남긴 또 하나의 미라 [1] 거대한 산상 지하궁전 주로 미라에 집중하면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를 논하매, 우리는 비록 미라가 나오지는 아니했지만, 같은 시대에 만든 비슷한 무덤으로, 마왕퇴 발견 직전에 중국을 경천동지케 한 저 만성한묘满城汉墓를 찾지 않을 수 없다.이 만성한묘는 저 남쪽 한漢 문화 직접 유산은 아니지만 역시 동시대에 적지 않은 한 문화 세례를 받은 비슷한 시대 남월왕묘南越王墓와 더불어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 이 셋은 첫째 만든 시기가 거의 같고 둘째 묻힌 사람 신분이 대략 비슷해서 제후왕 혹은 그에 버금하는 일가부치 무덤이요, 셋째 무엇보다 그 대략하는 양상이 거의 관통하기 때문에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더구나 남월왕묘와 지금 다루는 만성한묘는 비록 시신은 다 썩어문드러졌지만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해서 .. 2025. 3. 4.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