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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60

[마왕퇴와 그 이웃-82] 거마의장도의 말 (4)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인 기마민족설"은 어디서 왔는가? 이 설 자체는 한국에서 처음 주장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오래된 설도 아니다. 이는 옛날 신문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 한국인이 기마민족이라는 주장은 저 유명한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다. 그 이전에는 이런 개념은 한국사에도 없었다. 원래 일본 쪽에서 기마민족 일본정복설을 이야기할 때여기서 기마민족이란 다름 아닌 고구려 계열 민족을 가리킨다. 이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말과 기마에 관해서는 서기 5세기 보다 많이 올라가기 힘든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로따라서 5세기 고분의 급변은 대륙의 기마민족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할 때는사실 그 "기마민족"이 유목민족이라던가아니면 말을 옛날부터 타온 전통적 말사육 민족이라던가이런 개..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1] 거마의장도의 말 (3) 아래는 한반도 말과 소위 기마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전에 써 둔 글이다. 마왕퇴 이야기에 부친다. ---------------한반도 말의 역사를 보는데 방해가 되는 선입견이 있으니 1. 우선 한국인은 기마민족이라는 유명한 선입견이 있다. 사실과 다르다. 한국인은 농경민족이며 말이 도입된 것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늦다. 한국인이 졸지에 기마민족이 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아마도 아메리카 대륙을 빼고는 가장 말 도입이 늦은 지역이 아닐까 싶은 일본열도 때문이다. 이 기마민족 운운의 선입견을 빼야 한반도 말의 역사가 제대로 보인다. 2. 말뼈가 나오면 무조건 사육되었다는 생각 우리나라는 발굴현장에서 말뼈가 나오면 무조건 말 사육의 증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런 말뼈는 다른 나라에서는 사육말이라..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80] 거마의장도의 말 (2) 계속 쓴다. 우리가 말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특히 한국인의 경우에는, 한국인이 기마민족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왜 그런가 하는데 대해서는 누차 이야기한 바 있다. 결국 한국인은 말의 역사에서 보자면 결코 일찍부터 이를 탄 민족은 아니며일본보다야 빠르겠지만 중국보다도 말을 일찍탔다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라는 것이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말사육의 역사는 소 사육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소의 조상이 되는 야생 소 (원우)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에 소 사육이 시작되기 전에도 소뼈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는 야생 소로서 키우던 소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소는 인도 혹소를 제외하면 모두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다. 심지어는 한국의 황소도 그렇고 일본의 와규도 예외 없다...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9] 거마의장도의 말 (1) 3호묘에서 나온 유물에 대해서는 김단장께 설명을 미루어 두었지만, 이 무덤에서 나온 거마의장도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3호묘의 피장자는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 의해 2대 轪侯인 利豨로서, 기원전 168년 경에 뭍힌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다른 사육동물에 비해 출현이 늦어소의 경우 이미 용산문화시기에는 뚜렷한 사육의 족적을 남기는데 반해 말은 상나라 시기까지 내려와서야 제대로 사육된 흔적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동아시아 전체가 말 사육이 서방보다는 많이 늦어서 중국은 상나라지만 우리와 일본은 더 늦어서 필자가 아는 한 말과 소 등 대동물 사육은 우리의 경우는 점토대토기 단계, 그리고 일본에서는 서기 4-5 세기 정도가 되어서야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는 ..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8] 미라가 없는 3호묘 3호묘를 발굴 해 가면서 1호묘와 거의 비슷한 구조가 속속 확인되었다. 백고니와 숯으로 곽실 주위가 밀봉되어 있었는데그 안에는 잘 보존된 관곽이 확인되었다. 3호묘의 곽실을 열자 그 안에는 풍부한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들을 흥분시켰는데 마왕퇴에 뭍힌 대후의 일가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물증이 나왔다. 그 내력에 대해서는 여기 자세히 쓰지는 않겠고, 단지 필자의 경험으로 부연할 이야기가 있는 부분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마왕퇴 3호묘에서 확인된 유물의 문화적 측면에 대해서는김단장꼐서 조금 더 자세히 부연할 것이라 생각한다. 3호묘를 조사하던 중 여기서도 소위 "T자형 백화"가 나왔는데 1호묘에서 이 T자형 백화에 피장자가 노부인으로 그려져 있었듯이 여기에는 유씨관을 쓰고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허..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7] 마왕퇴에서 보는 폼페이의 그늘 연전에 김단장께서 폼페이의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을 석고로 떠내는 이야기를 여러 번 이곳에 소개한 한 바, 마왕퇴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다. 마왕퇴 3호묘 발굴 현장에서 무덤을 파들어 가던 중 묘도의 흙벽 위에서 구멍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난것이다. 처음에는 이 구멍을 도굴 구멍으로 생각했었는데 도굴구멍으로 보기엔 너무 구멍 크기가 작었다. 그러면 야생동물이 판 구멍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반대로 너무 컸다. 이 당시 발굴단은 파들어가던 작업을 중단하고 이 구멍에 석고를 부은 다음 두어 시간 후 주변흙을 파내어 제거했는데 석고의 모습은 1 미터 정도의 사슴 뿔을 쓰고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을 좌우로 벌린 형태의 "인형"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이 석고로 뜬 인형의 모습은 영화로도 촬영되었다고 하는..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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