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04 [마왕퇴와 그 이웃-27] 곽말약의 실언 (?) 마왕퇴 발굴 조사에 위에서 엄호사격을 한 두 인물, 주은래와 곽말약도 문혁과 사인방 서슬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 중 곽말약은 마왕퇴 때문에 한 번 크게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그 사연은 이렇다.곽말약이 마왕퇴에서 발견된 1호 묘 미라가 도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묻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여담 삼아 했다는 이야기가 하나 떠돌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서한 문제 때 황제와 이름 모를 궁녀 사이에 난 사내 아이가 곧 나중에 한 경제가 되었는데 문제의 아들을 낳은 후 질투하는 황후에게 쫒긴 그 후궁은 장사 땅에 몸을 숨겨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경제가 된 후에도 자신이 모친임을 알렸지만 경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워 하여 그녀를 장사땅에 모셔 두고 극진히 ..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6] 마왕퇴 한묘에 대한 의문 마왕퇴 관련 책을 읽다보 니, 중국에서 대형 목곽 묘실제도가 완성된 것은 전국시대와 서한시대 사이인데이 시기에는 아직 관곽 바깥에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없었다고 한다. 제왕과 고위관료 등 무덤을 중심으로 관곽 바깥에 벽돌 등으로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서한 말에서 동한 초에 생겨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마왕퇴에서는 묘실 없이 관곽만 보이고, 남월왕묘에서는 관곽 외에 별도의 묘실을 쌓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무덤 모두 서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책에서 본 위 이야기가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마왕퇴 한묘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이미 고위급 왕공 무덤은 별도의 묘실을 두는 것이 한 흐름이었다면마왕퇴 한묘에서는 그것이 안 보인다는 점은이 무덤이 아무리 화려..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5] 팽륭상彭隆祥 (25)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마왕퇴 고시연구라는 책은 당시 중국사회의 전통에 따라 집체창작으로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 기억으로는 이 책에는 호남의학원인가 하는 이름만 적혀 있을뿐팽융상이라는 이름은 따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팽융상이란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그 후 1980년대에 서구에 투고된 그의 영문 논문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중에 고시연구 중국어 보고서 원문을 입수하여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팽융상은 서구의 출판물에 마왕퇴 연구결과를 영문으로 투고했는데 그 내용은 고시연구에 쓴 내용을 간추린 것이었다. 이 논문에는 문물출판사에서 나온 고시연구와는 달리 그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 냈다. 이 논문을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고시연구 보고서 자체가 팽융상이 사실상 집필 책임을.. 2025. 3. 3. [능혜평凌惠平 미라] (1) 산동반도로 북상하는 미라 발견 지점은 Bing 지도여러 위치를 찾고, 환승/도보/운전 방향을 확인하고, 실시간 교통량을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위성, 공중 및 거리 이미지를 보세요. Bing 지도를 다양하게 이용하세요.www.bing.com 이 발견 지점에서 유의할 대목은 주로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중국 고대 미라가 나오는데 견주어 이 분은 상당히 북상한 지점을 정좌한다는 사실이다. 산동반도 아래 끝자락이다.바다랑은 비교적 가까운 지점이다. 능혜평凌惠平은 2002년 중국 강소성江蘇省 연운항連雲港에서 드러난 서한 시대 여성 시신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신장위구르를 제외한 곳에서는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여성 시신과 호북성湖北省 강릉江陵 봉황산鳳凤凰山 한묘漢墓 남성 시신에 이은 세 번째 한나라 시대 습시溼.. 2025. 3. 3. 단 한 명도 초대받지 못한 한국 마왕퇴학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湖南宾馆会议中心2楼大会议厅 2024-08-18 14:00 to 2024-08-19 18:00 8月17-20日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 | 湖南博物院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www.hnmuseum.com 요새 마왕퇴 관련 자료를 수거 배열 선별하느라 사납거니와, 그러면서 하도 정신이 사나워 내가 이러다가 마왕퇴 그 강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일거니와 그러는 와중에 검색에 저 소식이 걸린다.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는 엄밀히 발견 기점으로 하면 우리 무령왕릉의 그것과 같은 1971년이요, 그것이 본격 발굴되시 시작한 시점은 1972년이라, 그 발굴 50주년이라 하..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4] 팽륭상彭隆祥 (4): 미라 연구의 수준 이 고시연구古尸硏究라는 책을 보면 실물을 국내에서도 전문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책 자체 장정은 정말 낡고 형편없다. 이 책이 출판된 때가 1980년인데, 중국이 빈곤과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그 안에는 사진이 많이 실려 있는데 흑백사진 위주인데다 퀄리티가 정말 형편없다. 사진은 디테일이 뭉그러져 보기 힘들 정도다. 마왕퇴는 발굴 당시 정부 지원을 받아 도록 등은 컬러로 꽤 괜찮게 뽑은 것으로 아는데 이 고시연구라는 책은 문물출판사에서 냈는 데도 장정 수준이 열악하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시 중국의 전반적 사회의 수준 그리고 장정이 보여주는 허름함, 1980년이라는 시기 연구 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 2025. 3. 3.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1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