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289

그 많은 통훈대부가 모록이다? 호적이나 족보를 보면, 대개 통훈대부와 같은 품계를 받으면 더이상 유학이라 쓰지 않고 그 품계를 직역에 적는다. 대개 호적이나 족보에 앞서 김단장께서 올리신 것과 같이 등제 출신, 음서의 가능성이 없는데 느닷없이 품계가 나오는 경우에는 필자는 이건 공명첩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데 공명첩을 사서 품계를 얻는다면 이게 모록일까? 필자는 모륵이라는 말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보는 바,모록은 그야 말로 없는 사실을 위조해 만드는 사기술에 붙여야 할 이름이지정부에서 흉년 때 납속 등의 댓가로 발부한 공명첩-. 이걸로 얻은 품계에 모록이라는 말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록이라는 말은 자격도 없이 자기 맘대로 사칭했다는 뜻이 있는 바, 공명첩의 대가로 얻은 품계의 고신은 이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이다.. 2025. 8. 30.
이른바 유학모칭론을 비판한다 (2) 이러한 시각은 필자도 16-17세기라면 타당하다고 본다. 이 시기에는 필자 생각에도 만약 양반이 아닌데 유학을 참칭했다면유림의 공론에 의해 유학에서 퇴출되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에는 호적에 유학이라고 올려놔도 퇴출되지 않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유학인 상황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누구도 저 놈은 유학도 아니니 빼버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일까? 19세기가 되면 이른바 유림의 공론이란 쑥덕거림 이상의 의미는 더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조선사회의 정점에는 전통적인 명가들이 계속 집권해 있었고 유림의 공론의 여진이 계속 남아 있긴 해지만, 유림의 공론으로 유학이라 호적에 올린 이를 맘대로 쫒아내지 못하는 여건이 이미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대원군 집정후 전.. 2025. 8. 30.
이른바 유학모칭론을 비판한다 (1) 일반적으로 18-19세기에 급증한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다. 이것을 양반으로 간주하여 19세기에 양반이 급증했다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라는 시각이 있다. 19세기가 되면 양반이 급증한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필자가 알기로 일본인학자 사방박四方博이다. 그는 우리나라 대구부 호적을 분석하여19세기까지 한국에서 유학으로 상징되는 양반호구가 급증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의견이 있다고 본다 .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여러 설왕설래 중19세기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며이들을 모두 양반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붙인 이름이 이른바 "유학모칭자"이다.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타당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써 본다. 우선 "유학모칭자"라는 .. 2025. 8. 30.
김단장께서 포스팅 한 준호구 필자의 포스팅에 김단장께서 자료 사진을 하나 붙여두신 바 이 자료에 대해 필자 나름의 해설을 좀 해본다. 조선시대에 준호구는 호적을 기본으로 뗀 요즘으로 치면 호적등본 같은 것인데, 대개 과거 시험 보러 갈 때들 많이 뗐다고 들었다. 이 준호구는 광서 8년에 발급된 것이니 1882년이다. 이 해에 임오군란이 있었다. 이 준호구를 발급받은 분이 과거를 보러 이것을 뗸 것이 맞다면 청운의 뜻을 품고 올라갔을 터. 이 분의 직역은 이 자료를 보면 유학이다. 양반이라는 뜻이다. 준호구에 부인의 성 아래에는 "씨"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호적에 "씨"는 아무나 붙이지 않고 양반의 부인에게만 "씨"를 붙인다. 호적에서 중인의 부인은 "성", 평민의 부인에게는 "소사 (혹은 조이)"로 붙이므로 이 준호구를 보면 이 .. 2025. 8. 30.
호적에서 믿지 못할 정보 하나 나이 족보와 호적을 대조해 내려가다 보면, 양측에 서로 보완하는 기록도 있고 영 안 맞는 기록도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이 호적과 족보의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1-2대 아래의 호적을 보면 정정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 어쨌건 양반들은 3대조 이름을 적게 되어 있으므로 위 대에서 다른 이름이 1대 내려오면 족보 이름과 매칭되는 경우가 나온다. 이런 경우 호적과 족보가 서로 이름이 다른 경우는 요즘도 볼 수 있는 사례이므로 특별한 부분은 아니다. 유난히 호적과 족보가 상충되는 것 중의 하나가 군역이 무조건 면제인 상층부 양반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평민이나 면제가 아슬아슬한 양반들의 경우 호적에 올라 있는 나이를 믿을 수가 없다. 군역은 조선시대에 16-60세까지인지라,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유난히 .. 2025. 8. 30.
욕도 많이 먹는 진종황제 권학문 富家不用买良田,书中自有千钟粟。 安居不用架高堂,书中自有黄金屋。 出门莫恨无人随,书中车马多如簇。 娶妻莫恨无良媒,书中自有颜如玉。 男儿欲遂平生志,五经勤向窗前读。진종황제 권학문은 아시다시피 고문진보 첫권 첫머리에 나온다.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성리학이 깊게 침투하여 과거제를 세상 적폐로 간주하던 그 시기에도 고문진보는 열심히들 읽었는데 그 고문진보 첫장을 딱 넘기면 저 진종황제 권학문이 첫 부분에 나온다. 이 진종황제 권학문은 그 내용이 보여주는 적나라 함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 이들에게 학문이란 위기지학, 자기 수양의 도구이며 진리의 추구인 것이지결코 녹이나 먹자고 하는 것이 아님을 설파하였는데고문진보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진종황제가 설파한 바 공부 열심히 하면 잘먹고 잘산다는 저 이.. 2025. 8.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