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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823

김훈과 최질의 제2차 고려막부정권, 그 시작과 전개와 결말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그 3차 귀주대첩으로 가는 길목에 만난 중대한 사건이 이 막부쿠데타다. 이 드라마 25회가 그 발발을 다루고, 26회 역시 그 연장을 다룰 것이 확실하거니와 지금의 대통령 경호부대장들인 김훈과 최질이 주도한 이 2차 고려막부정권에 대해서는 우리 THE HERITAGE TRIBUNE이 장기 연재한 것이 있으니 혹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셨으면 한다.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historylibrary.net [제3차 고려 막부정권] (2) 영업전이 당.. 2024. 2. 18.
한국이 소비하는 거란, 언제나 곁다리 이 주체를 이른바 직업적 학문종사자로 국한한다면, 이 분야를 개척한 주인공은 동빈 김상기다. 1세대 역사학도가 거개 그렇듯이 동빈 역시 잡탕이었다. 동빈이 지닌 가장 큰 무기는 한학漢學이었다. 그는 한문이 동시대 어떤 연구자보다 탁월했다. 서울대에 교편을 잡으면서 동양사라 특징지을 만한 일군의 학도를 길러냈고, 지금 한국에서 동양사라 하면 거개 동빈을 남상으로 삼는다. 이 동양사는 지금은 합쳐진 듯한데, 서울대에 동양사학과가 별도로 독립하고, 고려대 역시 그러했다고 기억하거니와, 아무튼 이 두 학교를 발판으로 동양사는 나름 독자성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쓰는데, 이 동양사가 탑재한 가장 큰 문제는 한국사 서양사랑 따로 노는 문제였다. 이를 역사 영역 전반, 특히 한국사를 기준으로 한국사 영역으로 급격히 포섭.. 2024. 2. 18.
[거란의 치맛바람 spinoff] 공주의 등급 거란은 요사遼史를 중심으로 귀납으로 살피면, 황제 소생 딸들한테서도 당연히 정비 소생이냐 혹은 첩실 소생이냐에 따른 신분 차별이 엄격하고, 나아가 그 자체 등급 역시 등락이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 공주 봉작제도에 대해서는 요사遼史 어디에서도 체계적인 논급 혹은 정리가 없어 모조리 사례 중심으로 살펴 그 작동원리를 추단하는 수밖에 없다. 위선 이 봉작 제도를 보면 공주는 철저히 현재의 황제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정비 소생은 당연히 자동으로 공주公主라 한다. 후궁 소생은 엄마 격에 따라 아래로부터 현주縣主와 군주郡主가 있고, 아예 봉작을 받지 못하는 딸도 있다. 공주냐 군주냐 현주냐 하는 봉작이 이뤄지는 시점은 모르겠다. 태어나서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긴 뭐 그때야 걸핏하면 얼나 때 죽었.. 2024. 2. 18.
증폭해서 살려 본 벽초와 육당 동시대를 살다간 춘원과 달리 벽초 홍명희와 육당 최남선은 좋은 사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두 사람 연구에 일대 장애가 되고 있는데 ai 도움을 빌려 거지 같은 해상도를 살리고 다시 포토샵 기능 일부를 가미해 최대한 복원해 봤다. 일부는 왜곡 논란을 부를 수도 있지마는 최신 기술을 응용하면 거지 같은 저 거인들도 더 생생히 다가 온다. 이상 홍명희다. 이상 최남선이다. 2024. 2. 17.
[거란의 치맛바람] (14) 세 번 결혼한 죄인 공주 거란 7대 황체 흥종興宗 야율종진耶律宗眞(재위 1031~1054)은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즉위 초반기에는 워낙 어렸던 데다 별난 엄마 소누근蕭耨斤한테 짓눌려 성년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딸은 둘이 확인되는데 모두 정비 인의황후仁懿皇后 소달리蕭撻里 소생이라, 첫째를 아율발근耶律跋芹이라 하고, 둘째를 야율알리태耶律斡里太라 하거니와, 이 둘째는 정국공주鄭國公主에 봉해지고 청녕清寧 연간에 장공주長公主가 되었으니, 장공주란 앞서 누누이 말한 대로 황제의 고모가 되면 거의 자동으로 붙은 칭호였다. 이 알리태는 수륭壽隆 연간에 장공주 중에서도 대빵 장공주라 해서 대장공주大長公主가 되는데, 아마 언니가 죽고 나서 이리되었거나, 아니면 황제의 왕고모 할매가 되어 이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 2024. 2. 17.
미증유의 대재난 을축년대홍수, 공공사업으로 이재민 구조에 나서다 다시금 말하지만 1925년 을축년대홍수는 단군조선이래 한반도가 직면한 자연재해로는 미증유였고 그 피해 역시 전국적이었으며 이재민만 물경 60만을 양산했다. 이런 미증유 사태에 정부는 어찌 반응했는가? 우리는 자꾸만 이 시대를 국권을 상실한 시대로 설정하니 정작 봐야 할 것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가 되었으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시기는 권력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권력으로 대체된 시절이라는 점이다. 국권을 상실한 적은 없다. 그 국권의 주체가 대한제국에서 대일본제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 시대를 국권상실로 치환하니 식민당국의 모든 행위는 불법탈법이 될 뿐이다. 권력탈취가 합법이었던 적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없다. 고려왕조 개창 조선왕조 개창 역시 다 불법탈법이었다. 그렇다 해서 우리는 ..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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