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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1753

[귀주대첩 이후] (1) 파탄난 양다리 외교 대략 30년간 파국을 맞은 고려-거란 관계가 1019년 2월 귀주대첩을 고비로 일단락하면서 두 왕조는 급격히 외교관계를 회복하니 이는 곧 고려와 宋 관계의 재편을 의미하기도 했다. 거란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고려는 거란과의 국교 일체를 단절하고서는 일방적으로 송의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종주국을 송으로 바꾼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제 이런 임시방편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고려는 귀주대첩이 있는지 대략 1년 반 정도가 지난 현종 11년, 1021년 6월에 한조韓祚를 우두머리로 삼은 사절단을 송에 보낸다. 이 일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遣韓祚如宋, 遣韓祚如宋, 謝恩, 곧 한조를 송에 보내어 사은謝恩했다 해서 대단히 무미건조하게 적혔고, 이듬해 현종 12년, 1022년 5월 병자일에는 한조가 귀국.. 2024. 3. 10.
[마질차] (7) 마질차 엄마는 김유신의 딸 김유신 자식은 삼국사가 삼국유사에 그 실체가 어느 정도 공개되지만 아들만 실명 공개했을 뿐이요 특히 전자에서는 네 딸을 두었다 했지만 그 넷은 이름도 없고 당연히 행적도 없다. 예서 드는 의문. 김유신 정도 되는 아버지 딸들이 평이한 삶을 살았겠는가? 한데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는 그 네 딸 이름만이 아니라 그 행적 또한 비교적 소상히 보이는데 예상대로 간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네 딸 이름을 진광晉光 신광信光 작광酌光 선광善光이라 해서 첫 부인 령모令母. 소생이라 밝힌다.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김유신 장남 삼광三光과 더불어 모조리 光을 돌림자로 썼다. 이들과 달리 김유신이 환갑에 취한 지소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노자의 별칭인 장이長耳만 빼고선 원술元述을 필두로 모조리 元자를 돌림으로 쓴다. .. 2024. 3. 10.
요사遼史 야율팔가耶律八哥 열전 요사遼史 권72 열전列傳 제10 야율팔가耶律八哥는 字를 오고린烏古鄰이라 하며 오원부五院部 사람이다. 어려서 총명하고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자리서 암송했다. 통화統和 연간에 대대로 업을 닦아 본부本部(오원부) 관리가 되었다가 얼마 안 있어 승진하여 갑살월閘撒狘이 되었다가 이내 추밀원시어轉樞密院侍御로 옮겼다. 송나라 장수 조삼曹彬과 미신米信이 연燕을 침입하자 팔가는 호종하여 공을 세우고 상경유수上京留守로 발탁되었다. 개태開泰 4년(1015), 초치되어 북원추밀부사北院樞密副使가 되고 조금 있다가 동경東京을 유수留守했다. 7년(1018)년, 上이 명하여 동평왕東平王 소배압蕭排押帥한테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케 할 적에 팔가八哥는 도감都監이 되었다. 개경開京에 이르러 크게 약탈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하茶河와 .. 2024. 3. 10.
[마질차] (6)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 김흠돌 신라가 일통삼한을 달성하던 무렵 7세기 중후반 신라사에는 흠欽이라는 글자를 선호하는 이름이 유행한다. 김유신 동생 김흠순金欽純(흠춘欽春이라고도 한다)이 있고, 역시 군사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내다가 신문왕 즉위 원년 반란 혐의로 처단된 김흠돌金欽突이 있으며, 또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서 8등 사찬이면서 낭당대감으로 출전해 장렬히 전사한 김흠운金欽運이 있다. 이들 관계를 결론으로 앞서 말한다면 김흠돌은 김흠순의 조카이며, 그런 흠돌과 흠운은 아버지가 같고 엄마가 다른 동부이모同父異母 형제다. 물론 이런 내용, 곧 저들의 관계는 기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화랑세기와 그 족도族圖인 상장돈장上章敦牂에서 드러난다. 김흠순이야 그의 친형이 김유신이니, 그 계보에 대해서는 볼짝이 없지.. 2024. 3. 10.
3차 고려거란전쟁 당시 수도방위는 김종현 몫 드라마는 고려거란쟁은 개경이 텅빈 것으로 설정했지마는, 그리하여 현종의 결단 혹은 기지로 곧장 개경을 향해 진격하는 거란군을 철수케 한 것으로 처리했지마는 이는 현종 띄우기 이하도 이상도 아닌 설정이다. 청천강변에 본진을 둔 강감찬은 거란군이 퇴각하기만을 기다렸다. 대신 남하하는 거란군을 곳곳에서 괴롭히는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는 한편 김종현한테는 기병 만명을 주어 수도방비를 맡겼고 혹시나 해서 여진을 방비하는 동북면 군사 삼천삼백도 빼내서 개경을 방어케 했다. 나아가 현종은 청야전술을 채택해 거란 약탈을 원천에서 봉쇄한다. 곳곳에서 깨지고 무엇보다 보급이 차단된 소배압의 거란군은 마침내 개경을 백리 앞둔 신은현에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 철군 소식은 즉시 개경수도방비사령부에도 전달되는데 김종현은 퇴주하.. 2024. 3. 9.
먼지를 일으켜 공포를 유발하는 거란군 앞서 거란군 전법 중에 어린이나 노약자를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이야기를 했거니와, 그 이야기가 수록된 요사遼史 권34 지志 제3 병위지兵衛志 상上을 보면 그에 이어 오늘 방영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31화에서 보인 먼지 일으키기 전법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또 타초곡打草穀 집안 장정[家下]들을 시켜 말에다가 두 빗자루를 매어 바람을 이용해 재빨리 달리게 해서 적진에 먼지를 일으키며 번갈아 오가게 한다. 그리하여 적군이 주리고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승리를 거둔다. 먄악 진영 남쪽이 승리하고 진영 북쪽이 패했지만 주장主將이 진중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면 본국의 사방 산천 이름을 부르면서 소리쳐 부름으로써 그에 응하여 서로를 구원한다. 又令打草穀家下馬施變雙帚,因風疾她,揚塵敵陣,更互往來。中既饑疲,目不相視,..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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