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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경과 식생활의 역사212

잡곡인가 도작인가 중국도 이른바 진령-회하선이라는 것이 있다. 남중국과 북중국을 가르는 선이다. 이 선을 경계로 화북과 화남의 여러가지 지표가 차이를 보인다는 유명한 경계선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 진령-회하선을 경계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체계가 결합한 문명이다. 한국사를 보자. 한국사 두 개의 상이한 체계-. 한국사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잡곡문명과 도작문명, 두 개 문명이 결합한 체계였다. 부여-고구려는 도작문명과 거리가 멀었다. 이들이 남하하면서 도작문명과 결합하고 그 일파인 백제는 아예 도작문명의 왕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에 이어진 발해는 역시 잡곡문명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여러 왕조는 모두 도작문명이며 기본적으로 이들은 잡곡문명과 함께 단일 체계를 이루었던 경험이 없던.. 2023. 11. 21.
쌀이 나던 두 지역을 방기한 발해 발해 지도를 유심히 보면, 발해 땅에서 쌀이 많이 난 두 지역,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가 방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던 지역으로 발해 땅 안에서 쌀이 난다면 이 두 지역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보다 더 위로 올라간다면 당시 쌀 농사는 극히 어려워지는데, 발해에 대해 남은 기록을 보면 두만강 유역에서 쌀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역시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가 고조선 이래 줄곧 쌀이 나던 지역이라는 점은 변함 없을 것 같다. 발해의 5경은 이 두 지역을 빼고 설치되어 있는데, 고려 초기 기록에 서경이 완전히 버려져 폐허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함흥평야 역시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겠다. 따라서 위 지도를 보면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 2023. 11. 21.
잡곡문명의 이해 삼국통일 이전 한국문명의 북쪽 절반은 잡곡문명이다. 우리는 이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도작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고구려 부여의 이 잡곡문명이 그저 도작문명 비슷한 것이었거니 한다. 그러나 쌀농사가 없는 문명은 그 자체 엄청나게 다르다. 잡곡만으로 이루어진 문명. 이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가. 부여에 대한 삼국지의 기술을 보면 "오곡"이 난다고 했다. 삼국지 기술에는 "오곡"과 "벼"를 따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오곡은 쌀을 제외한 잡곡들이 다양하게 난다는 말이다. 쌀을 뺀 잡곡, 아마도 콩, 조, 피, 수수, 기장 등을 먹었을 텐데, 이는 단순히 먹는 곡식의 종류가 달랐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잡곡문명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이해해야만 우리는.. 2023. 11. 21.
부여와 고구려는 쌀과는 무관한 사람들 한국문명은 잡곡문명과 도작문명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잡곡문명은 지금 도작문명이 본격화하기 이전 초보적 농경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일단 부여와 고구려는 도작과는 상관없는 문명권이 아니었을까. 이 부여와 고구려의 잡곡문명은 어디서 왔을까. 요서 아닐까. 그렇다면 한반도의 도작문명은 어디서 왔을까. 산동반도 아닐까. 이 두 개의 이질적 문명이 평양쯤에서 결합해서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빠져 나간 것이 아닐까. #도작문명 #잡곡문명 #벼농사 #벼농사전파 2023. 11. 20.
북위 41-43도 이야기 다음으로 북위 41-43도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사에서 북위 41-43도가 돌파된 시기는 조선초기다. 이 시기에 사군 육진이 개척되면서 두만강 압록강선이 확정되고 북위 41-43도 선까지 북상했다. 일본사에서 북위 41-43도 선이 돌파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대략 메이지유신 이후 북위 41-43도선의 본격적인 개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 시대에는 한국의 경우 청의 봉금 지대인 북위 44도선까지 올라가 벼농사를 시작하였는데, 19세기 후반이 되면 한국과 일본사에서 각각 북상한 지리적 한계는 거의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사에서 북진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문제와 결부된 농업 기술, 생산성의 문제다. 한국이 사대를 했건 .. 2023. 11. 14.
고대의 코끼리표 밥통: 무쇠솥 요즘은 쿠* 밥통이라는 소위 K 밥통이 전 세계를 휩쓰는 터라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해외 나가면 너도나도 일제 코끼리 밥통을 사들고 오는 때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일제 밥통보다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었지만 그래도 몰래들 들고 들어오는 이유는, 어머니들 보기에 밥맛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러한 역할을 쿠*밥통이라는 K 밥통이 그러해서, 탈북자를 이야기를 들어보면 K 밥통에서 목소리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기능을 죽이고라도 이 밥통은 반입되는가 보다. 밥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철로 빚어낸 가마솥-. 소위 무쇠솥은 그 당시의 코끼리표 밥통이자 K 밥통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쪄서 익혀 먹던 밥맛이 똑같은 쌀을 쓰고 잡곡을 쓰고도 밥맛이 달라지는걸 보고 아마..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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