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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경과 식생활의 역사244

평양의 지리적 의미 평양이 가지고 있던 의미는 여기가 잡곡농경과 도작의 접경지대였다는 데 있다. 잡곡농경이라는 건 도작의 부차적 보조수단으로서의 잡곡재배가 아니라 도작 없이도 완결성을 갖춘 잡곡 농경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지 동이전에 "오곡에 맞다"고 할 때의 그 오곡. 이것이 바로 발해만 주변과 남만주 일대의 잡곡농경을 말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부여와 초기 고구려는 이 잡곡농경에 기반하여 일어났다. 대동강유역은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까지 줄줄이 이어진 섬을 타고 넘어 들어와 남하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비옥한 땅으로 여기는 도작도 가능하여 도작과 잡곡 농경이 만난 최초의 지역일 가능성이 높고, 고구려도 이 지역으로 손을 뻗치면서 비로소 잡곡과 도작 두 가지 농경을 모두 포괄하는 정치체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고구려가 만.. 2023. 12. 5.
쌀농사 따라 분포한 세형동검 대체로 세형동검 분포지가 쌀농사 북방한계선이며 진흥왕대 신라의 북진선이며 통일신라시대 북쪽 국경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왜 세형동검과 진흥왕 북진선과 통일신라 북쪽 국경이 거의 비슷한 선에서 멈추는가? 쌀농사 때문이다. *** Editor's Note *** 세형동검 분포지가 쌀농사 북방한계선 안에 대체로 위치한다는 점이 늘 필자가 지적하듯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세형동검 기능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기능에는 관심 제로다. 이것이 비극 아니겠는가? #세형동검 #세형동검분포지 #세형동검_벼농사 2023. 12. 4.
한반도 쌀농사가 산동성에서 넘어온 이유 한반도 쌀농사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여러 개의 답지가 있다. 우선 중국 쌀농사의 본거지라 할 양자강 유역에서 바로 건너왔다는 주장이 있다. 대개 오키나와를 타고 북상했다는 주장도 있고, 바로 황해를 건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산동성에서 바다를 건너 한강이나 대동강유역으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필자는 산동설을 지지한다. 산동성에서 요동반도로 일차 도해한 후 서해안을 따라 대동강까지 빠른 속도로 남하했을 것으로 본다. 왜 양자강에서 바로 들어오는 것은 어려울까? 우선 양자강에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고리인 오키나와가 쌀농사 시작이 아주 늦다. 이 해양로를 따라 북상했다면 오키나와에서 쌀농사가 보다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앞에서.. 2023. 11. 23.
새롭게 읽는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이순신의 녹둔도 싸움을 그린 수책거적도. 미술사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볼 때 이 그림은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북방 녹둔도를 털러 온 여진족에 활시위를 당기는 조선병사들의 모습은 정말 다이나믹하다. 16세기 긴박한 북방 개척촌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 싶다. 수책거적도의 주인공은 녹둔도 개척촌을 지킨 이순신 등 병사인 듯 하지만, 물론 이 군인들의 공을 결코 폄하할수 없겠지만, 사실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그림 한편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농민들이다. 들에는 아마 가을 걷이 철인듯 한데, 쌓아 놓은 모양으로 볼 때 벼 아닐까? 그렇다면 목책 바깥 너무 황급해서 지게를 버리고 들어온 바깥 농지는 밭이 아니라 논이 아닌가 싶다. 16세기 두만강 유역 녹둔도까지 올라가 여기서 논농사를 짓고 있던 .. 2023. 11. 22.
비싸서 연기한 잡곡 찐밥 실험 잡곡이 이렇게 비싼 줄 처음 알았다. 작은 잡곡 한 푸대 2킬로짜리가 삼 만원에 육박. 찐밥 몇 번만 지어 먹으면 다 먹을 양이더라. 이렇게 작은 잡곡 한 푸대와 20킬로 들이 쌀 한 푸대가 같은 값. 유사이래 한국에서 쌀 값이 이렇게 싼 때가 있었을까?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는, 남한 와서 보니 하루만 일하러 나가도 쌀을 40킬로를 사겠더라는 것이다. 잡곡이 되려 더 비싸니. 수수, 조, 기장 찐밥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실험해야 할 듯 하다. 2023. 11. 22.
벼농사의 남하와 북상 벼는 아열대 식물이다. 정확히는 베트남과 광동성 일대 어딘가의 야생벼가 경작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양자강 일대로 확산되어 크게 번창한 것이 벼농사다. 이후 산동성일대까지 북상하여 그 일파가 묘도군도를 거쳐 대동강유역을 지난 다음 한반도, 일본열도로 빠져나갔다고 필자는 본다. 벼농사의 이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남하할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북상할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벼라는 녀석이 아열대식물이라는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로 넘어온 후 대동강일대에서 한반도 남부, 그리고 일본열도로 남하하며 전파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을 거라는 것이다. 일본열도로 건너가면 큐슈에서 기나이까지지는 거의 동위도로 동쪽으로 횡보할 뿐 위도의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세토나이해 일대도 벼농사가 굉장히 빨..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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