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국 농경과 식생활의 역사244 계서鷄黍 : 닭과 기장밥 한시를 보면 반가운 손님이 오면 항상 내놓는 음식에 닭과 기장밥이 있다. 닭과 기장밥은 그래서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 항상 나오는 클리셰다. 그런데-. 닭과 기장밥 드셔본 적 있는지? 한 번 먹어 보려 한다. 밥은 깡 기장밥을 쪄서 만들고, 닭은 옛날 식대로 백숙으로 고아 소금만 놓고. 맛이 어떨지? 故人具雞黍 邀我至田家 綠樹村邊合 青山郭外斜 開軒面場圃 把酒話桑麻 待到重陽日 還來就菊花 맹호연의 過故人莊이다. 옛 친구가 나를 청하는데 닭과 기장밥을 지어 놓고 불렀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절창이다. 2024. 1. 27. 우리가 아는 밥맛은 쇠솥이 나오면서 나왔다 필자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곡물취사는 초기에는 찌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찌는 방식으로 취사를 해 보면 쌀과 다른 잡곡의 맛이 별차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쌀의 단맛도 덜하고 특히 쌀 도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현미로 밥을 찌게 되면 수수밥이나 기장밥과 별차이 없다. 우리가 아는 쌀밥 맛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쌀밥맛은-. 철제 솥이 나온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 곡물을 솥안에 직접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불을 줄여 긴 시간 작은 불로 뜸들이는 우리가 아는 방식의 밥 짓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다른 곡물로 차별성이 생기게 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이런 경우에는 해먹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알겠는가? 해 먹어 보니 그렇더라 그 이야기다. 특히 쇠솥이.. 2024. 1. 25. 무쇠솥 뚜껑은 왜 중요한가 결국 압도적 밥맛은 밥을 할 때 가열되는 와중에 어느 정도로 효율적으로 증기를 잡아낼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도 이것은 중요하다. 현대 전기밥솥이 거의 압력솥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코펠로 밥을 지어 본 사람은 알 텐데, 요즘은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필자가 학생 때만 해도 설악산 꼭대기에서 코펠로 밥 지어 먹는 사람 천지였다. 설악산이 해발 1700 미터인가 뭐 그럴 텐데 이 정도 고도만 되도 물이 100도 아래에서 끓기 때문에 코펠 같이 얇은 두껑으로 간신히 막아 놓은 취사기로 밥을 하면 백프로 설익게 된다. 산 꼭대기에서 선 밥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짱똘을 가져다가 코펠 뚜겅 위에 올려 놓는다. 100도 이하에서 끓는.. 2024. 1. 25. 밥 뜸들이기는 한국의 발명품인가? 현재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밥 뜸들이기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의 발명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물로 밥을 끓인 후 마지막 단계에서 뚜껑을 닫고 불을 줄여 뜸들이며 바닥 쪽을 가볍게 태워 누룽지도 만들어 내는 방식의 취사는 밥맛을 혁신적으로 좋게 했는데 이런 방식의 취사는 한국 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그 구체적 시기는 아마도 쇠솥의 출현 이후일 텐데, 필자의 감으로는 쇠솥의 모양.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전 포스팅에서 김단장께서도 얼핏 지적하신 듯한데 필자가 보기엔 같은 쇠솥이라도, 밥을 찔때 쓰는 쇠솥과 밥을 끓여 뜸들일 때 쓰는 쇠솥의 모양이 다른 것 같다. 밥을 찔떄 쓰는 쇠솥은 아마도 청동기시대 이래 토기 중 시루 아래 쪽에서 물을 끓이는 토기와.. 2024. 1. 25. 철솥의 진화: 쇠뚜껑은 언제 출현했나 최근까지 발굴 보고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철솥은 초기에는 쇠뚜껑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 철솥은 토기로 밥을 쪄먹던 시대의 물끓이는 아래쪽 토기의 역할을 했다고 보이고, 이런 예가 아차산보루에서 나온 위는 토기 시루 아래는 쇠솥의 조합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어느 시기부터인지 특정하기 어렵지만, 밥을 쪄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끓는 물로 취사하는 방식의 지금과 같은 밥짓기가 탄생했다고 보이는데 이런 밥짓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아마 처음에는 쇠솥의 뚜껑은 나무뚜껑이었지 싶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쇠솥의 뚜껑을 나무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어느시기부터인지 쇠뚜껑이 나올 텐데 필자 생각에는 이 쇠솥의 쇠뚜껑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를 특정하는 것 역시 쇠솥이 출현하는 시기 못지 않게 .. 2024. 1. 25. 보리에 현미, 그리고 일즙삼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독한 구두쇠였다고 한다. 천하를 잡은 후에도 그가 먹은 밥은 보리에 현미를 섞어서 짓고, 반찬으로는 일즙삼채였다고 한다. 여기서 일즙이라고 하면, 국이 한 종류, 삼채라고 하면 나물이 세 종류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반찬을 통틀어 말한다. 따라서 보리에 현미를 섞어 지은 밥에 국 하나, 반찬 세 가지를 먹었다는 뜻이겠다. 당시 모든 전국시대 영주가 이런 밥을 먹었던 것은 아니고 화려한 식사를 즐긴 이도 많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런 검소한 식사는 꽤 유명했던 모양으로 요즘도 일즙삼채하면 심플한 정식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조식을 주는 비즈니스 호텔에 묵으면 나오는 아침밥이 바로 일즙삼채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기서 밥을 백반이 아니라 보리밥+현미였다는 점만 다르겠다. 가끔.. 2024. 1. 17.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4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