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조선의 재지사족과 에도시대 사무라이 에도시대는 소위 막번 체제로서, 사무라이의 경우 그가 막부의 직할 무사가 되건 (하타모토), 아니면 1만석 이상의 영주(다이묘)가 되건, 영주에 귀속된 번 소속 배신(번사)이 되건 간에 어떤 형태든 소속이 있어야 석고제에 따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해 직역이 없는 사무라이는 없었다는 뜻이 되겠다. 소속이 없는 끈떨어진 사무라이가 결국 낭인이 되겠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실업자가 되겠다. 이렇게 낭인이 한 번 되어 버리고 나면 다시 막번체제로 돌아가기 위해 공을 세울 기회만 노리고 정치적 혼란기에는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막번체제는 적극적으로 제거하고자 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출사하지 않아 직역을 받지 않고도  대대로 사대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이 지방.. 2024. 8. 23.
될 만한 소리는 한 마디도 안 한 중농학파 우리나라 소위 실학은 여기 블로그에서도 몇 번 쓴 것 같지만 밑바닥부터 다시 감정해야 한다. 특히 실학 중에서도 중농학파. 이 사람들 주장을 보면 될 만한 소리는 하나도 없다. 토지개혁론이라고 한 소리를 보면완전히 중국 인민공사 내지는 북한의 집단농장 수준의 공상을 이야기 하고는 개혁론이라고 우겼고,멀쩡히 쓰던 돈을 사치 조장한다고 없애자고 한 인간이 있질 않나, 한 마디로 이 사람들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간 조선이 더 일찍 망할 판이었다는 말이다. 냉정히 중농학파 실학자들 한 이야기를 원전 텍스트를 가지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게 어디를 봐서 개혁론인가. ***  previous article ***  쓰던 동전 다 없애자는 이익 2024. 7. 27.
조선 후기의 잔반을 다시 본다 필자가 앞의 글에서 일본의 도사번이라는 지방정권 사무라이의 향배를 자세히 써 본 것은 일본사를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실 일본의 하급무사나 지하낭인 등은 우리 역사로 보면 딱 조선후기의 중인, 잔반 등의 계급에 해당한다. 일본의 하급무사나 지하낭인보다는 생활이 농민보다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사무라이라는 의식은 매우 강렬하였다. 이 때문에 메이지유신 당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그 출신이 하급무사이건, 지하낭인이건, 아니면 농민 출신이건 간에 자신들은 모두 "무사"라고 생각했지 "농민"이라고 생각하며 그 난전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조선후기 스스로를 "양반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족보의 조작" 혹은 "몰락한 양.. 2023. 8. 23.
농민과 아시가루足輕 출신의 신센구미新選組 막말 쿄토를 피로 물들인 신센구미新選組(しんせんぐみ)라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원래 막부가 막말 쿄토의 반막부 세력을 제압하고자 후원한 청부경찰조직 같은 것이었는데 20세기 후반들어 다수 소설가와 만화가가 이야기에 자꾸 살을 붙여 지금은 거의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 집단, 사무라이 정신을 구현한 무사단 정도의 평가까지 받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젊은층에 인기있는 애니 등에도 다수 이들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어 그 인기는 당분간 더 지속될 모양이다. 신센구미는 총인원 200여명 정도로 군대식 조직이 되어 있었는데 이 신센구미에서도 특히 유명한 인물은 다음 정도이다. 곤도 이사미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1868) 사이토 하지메 斎藤一 (1844~1915) 히지카타 토시조 土方歳三 (1835~.. 2023. 8. 19.
구한말을 보는 시각: 수탈과 농민 구한말 연구를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1. 수탈의 문제: 19세기 민란과 혼란을 "수탈" 때문이라고 간단히 규정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삼국지연의식 설명이지 사학계에서는 나올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탈"을 많이 할 수도 없는 나라였다. 수탈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경복궁 하나를 몇백년 동안 중건도 못하고 선비네들 집에 제대로 쭉 뻗은 기둥 하나 없어 죄다 굽은 나무만 썼겠는가. 그런 "수탈"은 어떤나라든 다 있었고 그건 그런 시대와 결별했다고 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 수탈 때문에 민란이 생겼다?: 반대의 시각도 가능하다. 17-18세기에 힘을 기른 피지배층이 비로소 19세기가 되어 지배층을 공격할 힘이 생겨 민란이 발생한 것이다. 왜 영국의 지배에.. 2023. 2. 16.
망국 전야 우리나라 구한말. 특히 갑오경장 이후 을사조약을 거쳐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우리에게 아마도 당시 국가 행정은 "개판 오분전"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남은 당시 공문서를 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행정이 원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었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도 국가 운영은 그럭저럭 잘 수행되고 있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전에 쓴 글에 구한말 대한제국관리 거의 절반이 조선총독부 하급관리로 승계되었다는 이야기를 쓴 바 있는데, 갑오경장 이후 경술국치까지 우리 생각처럼 그 "구한말"이 "나라도 아닌 상태"로 개판 오분전이었는지는, 그야말로 실증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느낌인데, 갑오경장 이후 조선-대한제국 정부를 근대국가로 보는 시각과 그게 아니라는 시각이 대립하는 것으로 아는.. 2023. 2.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