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연구를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1. 수탈의 문제: 19세기 민란과 혼란을 "수탈" 때문이라고 간단히 규정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삼국지연의식 설명이지 사학계에서는 나올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탈"을 많이 할 수도 없는 나라였다. 수탈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경복궁 하나를 몇백년 동안 중건도 못하고 선비네들 집에 제대로 쭉 뻗은 기둥 하나 없어 죄다 굽은 나무만 썼겠는가.
그런 "수탈"은 어떤나라든 다 있었고 그건 그런 시대와 결별했다고 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 수탈 때문에 민란이 생겼다?: 반대의 시각도 가능하다. 17-18세기에 힘을 기른 피지배층이 비로소 19세기가 되어 지배층을 공격할 힘이 생겨 민란이 발생한 것이다. 왜 영국의 지배에 대한 반격이 당시 영국식민지 중 가장 유복한 생활을 즐기던 아메리카에서 일어났겠는가? 19세기가 정말 그렇게 암울한 세기였는지도 다시 한번 봐야한다. 이게 20세기 초반에 식민지로 끝이 나버려서 그렇지 19세기가 흘러가는 방향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볼수 없다.
3. 동학혁명의 주체는 "농민"?: 동학혁명의 주체는 농민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니 이 혁명의 실체가 규명이 안 되는것이다. 농민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전직 현령부터 진사, 잔반까지 다 포함되어 있었고 어찌 보면 당시 집권 세력과 향촌의 지배자 빼고는 다 가담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걸 어떻게 "농민"이라고 규정하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동학혁명의 의의와 전개양상은 "농민"이라고 이 혁명의 주체를 규정하는한 제대로 밝혀질 날은 요원하다. 혁명세력의 실체를 더 쪼개야 한다.
4. "삼정문란"?: 한 가지만 물어보자. 조선시대 내내 양안과 호적이 제대로 만들어진 때가 있었는지. 삼정문란은 19세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것이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좀 더 디테일하게 찾아야 한다.
황건적의 난을 삼국지 식으로 이해한다면 발생원인과 소멸의 원인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19세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이 지금 딱 삼국지연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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