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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조선 후기의 잔반을 다시 본다

by 초야잠필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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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앞의 글에서 일본의 도사번이라는 지방정권 사무라이의 향배를 자세히 써 본 것은 일본사를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실 일본의 하급무사나 지하낭인 등은 우리 역사로 보면 딱 조선후기의 중인, 잔반 등의 계급에 해당한다. 

일본의 하급무사나 지하낭인보다는 생활이 농민보다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사무라이라는 의식은 매우 강렬하였다. 

이 때문에 메이지유신 당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그 출신이 하급무사이건, 지하낭인이건, 아니면 농민 출신이건 간에 자신들은 모두 "무사"라고 생각했지 "농민"이라고 생각하며 그 난전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조선후기 스스로를 "양반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족보의 조작" 혹은 "몰락한 양반들의 유세"정도로 폄하하며 단순히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허위의식일 뿐 실제 조선의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조선후기 몰락양반이나 중인, 부농들이 스스로를 "사대부" 혹은 "양반의 후예"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선비라는게 뭐냐. 범중엄의 이야기를 보자.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이것이 선비다. 

조선의 잔반, 중인들이 그 조상이 정말 양반이었건 아니건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양반의 후예로 자각한다는것은 유교에서 결국 나라의 운명을 자기 운명처럼 고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잔반의 양반의식이 "족보의 조작"과 "신분상승의 열망"에만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유교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구한말 핏줄로 전해진 소위 거족 벌열의 양반 후손들은 나라가 망할때 목숨 하나 제대로 던진 사람들이 없었지만 

결국 망국의 국면과 그 후의 부활, 그리고 20세기 한국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걸고 움직였던 사람들은 

일본으로 치자면 "하급무사"와 "지하낭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잔반이 족보를 위조했냐 아니냐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들이 스스로를 양반의 후예로 자처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선비냐의 여부는 핏줄이 아니라 행동거지로 결정되는 것이다. 

선비가 핏줄로 정의되는 것이라면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주역에서 사무라이라고 내놓고 떠들수 있는 인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범중엄이 갈파한 바와 같이 선비란 국가의 운명을 앞서 고민하고 가장 뒤에 즐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핏줄? 하나도 안중요하다. 실력도 없는 놈들이 핏줄을 파는 것이니. 구한말에도 수많은 벌열 집안의 후손들이 망국 때 같이 죽지 못하고 일제시대에는 조선귀족이 되어 호사를 누렸다. 무릇 친일파란 바로 그런 놈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먹고 살게 없는 와중에 공부 좀 해보겠다고 살길 찾아 발악하는 식민지 불쌍한 청년을 지칭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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