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159

마품왕(馬品王) 금관가야 제3대 왕. 재위 253∼291년. 마품(麻品)이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왕(麻品王).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마품왕(麻品王) 2018. 3. 15.
마품왕(麻品王) 금관가야 제3대 왕. 재위 253∼291년. 마품(馬品)이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왕(麻品王).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마품왕(馬品王) 2018. 3. 15.
Gyeongbonkgung Palace 600-year History in Fog, Today, Seoul Built in 1395, three years later after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Gyeongbokgung (慶福宮) is also commonly referred to as the Northern Palace because its location is furthest north when compared to the neighboring palaces of Changdeokgung (Eastern Palace) and Gyeonghuigung (Western Palace) Palace. The premises were once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J.. 2018. 3. 15.
그 신문이 그 신문? '기뤠기'로 격하된 지금이나, '기자'로 입성한 25년 전이나, 매양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신문이 왜 이리 많으냐,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 맨 같은 뉴스 뿐이라 종이 낭비라는 볼멘소리다. 그런가? 이젠 더는 비밀이 아니며, 더구나 언론계 내부까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마당에 이참에 그 한쪽 끄터머리에 숨어 있는 한 사람으로 한 마디 꼭 보탠다면 같은 신문은 지구상 인류가 출현한 이래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말하는 같은 신문이란 같은 사안을 다룬다는 뜻일 뿐, 같은 뉴스는 없다. 같은 사안이라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 눈만큼 다양하다. 10개 신문이 있다면, 10개 뉴스가 있을 뿐이다. 이명박이 독직 스캔들로 검찰에 어제 출두한 오늘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으로 머릿기사를 삼았다. 보니 .. 2018. 3. 15.
전밀(轉密) 문노(文努)의 유풍을 따르는 신라 화랑 집단에 소속된 불교 승려라는 사실만 확인된다. 활동시기는 그와 교유한 김흠운(金歆運)이 태종무열왕 2년(655)에 사망한 시점을 고려할 때 선덕~진덕~태종무열왕 무렵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김흠운 :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2018. 3. 15.
순경(順憬) 중대 신라 승려로, 신문왕 시대 무렵이 주된 활동연대일 것이다. 기원사 소속 승려다. 김유신 부하로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친 열기가 김유신 아들로 당시 국정을 장악한 삼광한데 군태수를 달라했지만 거절당하자, 삼광을 설득해 삼년산군태수를 주게한다. 기타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열기 열전 : 뒤에 유신의 아들 삼광(三光)이 집정하자 렬기가 그에게 가서 군태수를 청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렬기가 기원사(祇園寺) 승려 순경(順憬)에게 말하기를 “내 공이 큰데 군수를 달라 해서 받지 못했으니, 삼광이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나를 잊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순경이 삼광을 설득하니 삼광이 삼년산군(三年山郡) 태수를 주었다. 2018. 3.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