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751 "똥에 핀 꽃 왕소군王昭君"-석숭石崇 아래 텍스트는 《옥대신영玉臺新詠》 卷1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제목 왕소군사(王昭君辭)의 '사辭'란 굴원의 대표작을 《초사(楚辭)》라 하거니와, 이는 초 지방 노래라는 뜻이니 이에서 비롯되어 왕소군을 소재로 한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하다. 이 시에는 아래와 같은 서문에 있거니와, 이 서문이 《玉臺新詠》 찬자의 것인지, 아니면 왕소군사의 원래 저자인 석숭石崇의 것인지 지금 단안은 못하겠지만, 후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석숭(249~300)은 서진시대를 대표하는 사치가요 권력가였다가 나중에 패가망신했다. 그를 둘러싼 사치 행각은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산발한다.왕명군(王明君)이란 본래 왕소군(王昭君)인데, 曺나라 황제 문제文帝의 휘諱에 저촉된다 해서 이름을 고쳤다. 흉노匈奴가 .. 2018. 2. 24.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 李白의 ‘子夜吳歌’ 4首 중 春歌다. 秦地羅敷女 진나라땅 나부라는 여인采桑綠水邊 푸른 강가에서 뽕을 따네 素手青條上 고운 손 파란 가지에 올리니紅粧白日鮮 붉은 화장 햇살에 희게 빛나네 蠶飢妾欲去 누에가 배고파요 저는 가요 五馬莫留連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 2018. 2. 24. 전성남戰城南 : 내 시체 먹어줄 까마귀에게 한漢 악부樂府 중에 전쟁과 관련한 노래인 곡취곡사鼓吹曲辭 중에 나중에는 그 첫 대목을 따서 ‘성전남’(戰城南), 즉 ‘성 남쪽에서 싸우다가’라고 부르는 시 한 편이 있으니 가사와 옮김은 다음과 같다. 戰城南死郭北 내성 남쪽에서 싸우다가 외성 북쪽에서 죽고마네野死不葬烏可食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 까마귀밥 신세爲我謂烏 나 대신 까마귀에게 말해주오且爲客豪 부디 객을 위해 곡이나 해주라고野死諒不葬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腐肉安能去子逃 썩은 육신 어찌 그대에게서 도망치리오水深激激 깊은 물살 세차고蒲韋冥冥 갈대 덮어 어둑어둑梟騎戰鬪死 날쌘 말은 싸우다 죽어버리고駑馬徘徊鳴 둔한 말만 서성이며 울부짓네梁築室何以南何以北 집짓는 사람들 어찌하여 남북을 왔다갔다 하는지禾黍不獲君何食 곡식 거두지 못하니 그대 무얼.. 2018. 2. 24. 카르페 디엠carpe diem : 구거동문행(鷗車東門行) 다음은 漢代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중에 그 열 세 번째이니 이와 같은 民歌 성격이 짙은 시편은 원래 제목이 없는 일이 허다하니, 이것 역시 그런 신세지만 그 첫 줄을 제목으로 삼아 ‘구거상동문행驅車上東門行’이라 한다. 중국 고대 시가 제목 끝에 흔히 붙는 ‘行’은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流行歌’의 ‘行’ 아니겠는가? 아래 시는 그 전체 맥락이 carpe diem에 가깝지만 그 이면은 무척이나 씁쓸하다. 불교의 無常을 떠올리며 짙은 니힐리즘이 있는가 하면, 그리하여 그런 자각에서 마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번역은 다듬어야 할 곳이 적지 않다. 더불어 먼 훗날 이태백의 춘아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연상케 한다. 驅車上東門 구루마 몰.. 2018. 2. 24. 지식의 보편화, 전문가의 자리 내가 보건대 이것이 퍼지는 속도가 무섭다. 종래 특정 계층, 혹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으로 교육받은 사람만이 향유한다는 각 분야 전문지식이 이제는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젠 알량한 지식이랍시고 그걸 무기로 내세워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것이 문헌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역사학에서 무너졌다가 요새는 경계가 없어 고고학 미술사 건축학 등등이 모조리 철옹성을 열어제꼈다. 중국 고고? 동남아 미술? 인도 건축? 내가 그 전문가라고 까불다가 큰코 닥친다.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조금 안다고 알량거리다가 망신당한다. 한문 조금 안다고 알랑거리다가 면박당한다. 두공이니 박공이니 하는 용어 거들먹이다가 창피산다. 내 가본 곳, 그 뿌듯함이 있었지만, 이젠 안 가본 사람이 없다. 나보다 꽃보다 할배, .. 2018. 2. 24. 전통시대의 외교관 면책 특권, 의천과 소동파의 경우 전통시대에도 그 비스무리한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었다. 고려시대 의천을 보면 이 특권이 조금은 드러난다. 의천은 원래 밀입국자였다가 宋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송 두 나라 조정에 의해 외교사절단으로 급조되었다. 그의 宋 체재기간은 많아봐야 14개월, 대략 만 1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 다른 고려 외교사절단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우리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는 증빙은 어떻게 하는가? 당시에 아그레망이 있을 리는 없다. 귀국 이후 의천은 송 체재 기간 스승으로 섬긴 정원법사라는 승려가 입적했다는 말을 듣고는 제자들을 조문단으로 파견한다. 한데 하필 재수없게도 입항하는 쪽 지방장관이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라면 못 잡아먹어 환장한 그 소동파였다. 고려 조문단은 가는 곳.. 2018. 2. 24. 이전 1 ··· 4216 4217 4218 4219 4220 4221 4222 ··· 429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