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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986

아비지(阿非知) 신라가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적에 백제에서 초청된 기술자.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황룡사(皇龍寺) 구층탑(九層塔) :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16일에 자장법사가 당나라 황제가 준 불경(佛經)·불상(佛像)·가사(袈裟)·폐백(幣帛) 등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탑 세울 일을 임금에게 아뢰자 선덕왕이 여러 신하에게 이 일을 의논케 하니 신하들이 말하기를, "백제에서 공장이를 청해 데려와야 되겠습니다."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청해 오게 했다. 이리하여 아비지(阿非知)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 절 기둥을 세우던 .. 2018. 3. 21.
서동(薯童)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을 가리키는 즉위 전 이름일 수 있다. 글자 그대로는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인데, 실제 어릴 때는 마를 캐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은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름으로 말통이 있는데 이는 마동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 2018. 3. 21.
선화(善化) 신라 진평왕 셋째딸로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여인으로 '善花'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선화(善花) 2018. 3. 21.
선화(善花) 생몰년 미상. 신라인. 제26대 진평왕 셋째 딸인데,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백제 무왕과 혼인했으며 무왕을 설득해 미륵사를 세우게 했다는 행적이 확인되고 있으나 설화적 형태로 남아있어 얼마만한 사실성이 내재돼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나아가 근래 공개된 미륵사석탑 봉영사리기에 의하면, 무왕 정비는 사탁적덕의 딸이라 해서 선화라는 이름은 안 보인다. 《화랑세기》 필사자 남당 박창화가 남긴 화랑세기 관련 족도(族圖)인 《상장돈장》에는 선화가 진평왕 후궁 애리(愛理) 소생인 서녀(庶女)라, 무왕한테는 첩으로 들어갔다 했으니, 이쪽이 사실성이 높이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 2018. 3. 21.
사이왕(沙伊王) 백제 제7대 사반왕(沙伴王·재위 214∼234)에 대한 이칭.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 시조(始祖) 온조왕은 동명왕(東明王)의 셋째아들로서 몸이 장대하고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고,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했다. 또 다루왕(多婁王)은 너그럽고 관후했으며 위엄과 인망이 있었다. 또 사비왕(沙沸王; 혹은 사이왕沙伊王)은 구수왕(仇首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보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이를 폐하고 고이왕(古爾王)을 세웠다. 혹은 말하기를, 낙초(樂初) 2년 기미(己未)에 사비왕(沙沸王)이 죽고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사반왕(沙伴王) 2018. 3. 21.
사비왕(沙沸王) 백제 제7대 사반왕(沙伴王·재위 214∼234)에 대한 이칭.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 시조(始祖) 온조왕은 동명왕(東明王)의 셋째아들로서 몸이 장대하고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고,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했다. 또 다루왕(多婁王)은 너그럽고 관후했으며 위엄과 인망이 있었다. 또 사비왕(沙沸王; 혹은 사이왕沙伊王)은 구수왕(仇首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보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이를 폐하고 고이왕(古爾王)을 세웠다. 혹은 말하기를, 낙초(樂初) 2년 기미(己未)에 사비왕(沙沸王)이 죽고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사반왕(沙伴王)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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