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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986

련보(蓮寶) 생몰년 미상. 태종무열왕 때 재상을 지낸 김량도의 딸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또 다른 딸 화보(花寶)와 함께 절에 희사했다 한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공(法空) : 21년(534)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정사를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주초와 석감(石龕)과 섬돌을 발견하니 과연 그곳은 옛날 초제(招提)의 옛 터였다. 대들보감으로 쓸 재목은 다 이 숲에서 나왔다. 공사를 다 마치자 왕은 왕위를 사양하고 스님이 되어 이름을 법공이라고 고치고 삼의(三衣)와 와발만을 생각했다. 뜻과 행은 원대하고 고매하였으며, 일체 자비를 가졌다. 그리고 그 절 이름을 대왕흥륜사라고 했는데, 이는 대왕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것이 신라에서 절을 창건한 시초이다. 왕비도 또한 부처님을 받들어 비구니가 되어 .. 2018. 3. 23.
모척(毛尺) 본래 신라 사람이나, 642년 대야성 전투 때 신라를 배반하고 검일과 더불어 백제와 내통해 성이 백제에 함락되도록 하고, 아울러 이때문에 대야성주 김품석 부부를 죽임에 이르게 했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 정벌 때 신라군에 잡혀 처형됐다. 그의 가족들은 절 노비로 적몰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본기 : 7년(660)…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했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한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로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 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 백제로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 2018. 3. 23.
삼맥종(彡麥宗)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 이름이다. 심맥부(深麥夫)라고도 한다. 삼국사기는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흥왕 즉위년 :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 그때 나이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 동생인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서 법흥왕 딸이며,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했다. (眞興王立 諱 麥宗 或作深麥夫 時年七歲 法興王弟葛文王立宗之子也 母夫人金氏 法興王之女 妃朴氏思道夫人 王幼少 王太后攝政)삼국유사 권1 왕력 : 제24대 진흥왕은 이름이 삼맥종(彡麥宗)이니, 심●(深●)이라고도 한다. 김씨다. 아버지는 곧 법흥왕 동생 입종(立宗) 갈문왕이고, 어머니는 지소(只召)부인으로, 식도(息道夫人)이.. 2018. 3. 23.
거차돈居次頓 신라 법흥왕 때 순교한 불교 신자 이차돈의 다른 표기 중 하나다. 박염촉朴厭觸이라 하기도 한다.해동고승전 권제1 : 16년(529)에 이르러 내양자(內養者) 박염촉(朴厭觸. 이차돈 2018. 3. 21.
원광(圓光) 중기 신라 고승이다. 진평왕 11년(589) 중국 진(陳)나라로 유학 갔다가 22년(600) 귀국했다. 생몰년은 논란이 많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11년(589) 봄 3월에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불법(佛法)을 배우러 진나라에 들어갔다. 가을 7월에 나라 서쪽에 홍수가 나서 민가 30,360호가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겼고 죽은 사람이 200여 명이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 그들을 진휼하였다. 22년(600) 고승 원광이 조빙사(朝聘使) 나마 제문(諸文)과 대사 횡천(橫川)을 따라 돌아왔다. 30년(608) 왕이 고구려가 자주 강역을 침략하는 것을 걱정하여 수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원광에게 명하여 걸사표(乞師表)를 짓게 하니, 원광이 말하였다. "자기 살기를 구하여 남을.. 2018. 3. 21.
의상(義相) 625~702년.. 원효와 더불어 신라 중기를 대표하는 고승이다. '義湘(의상)'이라고도 쓴다. 한반도 화엄종 개조로 통한다. 속성 김씨로 한신(韓信)의 아들이다. 29세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하고 원효(元曉)와 더불어 당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혼자서 갔다. 지엄 문하에서 현수와 더불어 화엄종을 연구하고 670년 귀국했다. 유학 중에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하고 그곳을 점령한 당군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본국에 전달했다. 귀국 후인 문무왕 16년(676)에는 왕명에 따라 부석사를 창건했다.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6년(676) 봄 2월에 고승 의상(義相)이 왕명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삼국유사 권 제2 기이(紀異) 2 문호왕(文虎王) 법민(..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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