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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986

영랑(永郞) 신라 중기 때 화랑임은 확실하나, 자세한 행적과 활동연대 등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준영랑(俊永郞)의 줄임말인 듯한데 이 또한 확실치는 않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백률사(栢栗寺) : 부례랑을 봉하여 대각간(大角干; 신라의 재상 작명爵名)을 삼고, 아버지 대현(大玄) 아찬(阿喰)은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삼고, 어머니 룡보부인(龍寶夫人)은 사량부(沙梁部)의 경정궁주(鏡井宮主)를 삼았다. 안상은 대통(大統)을 삼고 창고를 맡았던 관리 다섯 사람은 모두 용서해 주고 각각 관작(官爵) 오급(五級)을 주었다. 6월 12일에 혜성(彗星)이 동쪽 하늘에 나타나더니 17일에 또 서쪽 하늘에 나타나자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것은 현금과 신적을 벼슬에 봉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에 신적을 책.. 2018. 3. 23.
모례(毛禮) 생몰년 미상. 신라 제19대 눌지왕-비처왕 때 일선군(一善郡)에 살던 사람으로 포교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신라에 들어온 불교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숨겨준 인물. 따라서 신라인 최초의 불교신자로 추정할 수 있다. 모록(毛綠)이라고도 한다. 성별이 불명하나 당연히 남성으로 간주한다. 다만, 화랑세기 필사자 남당 박창화가 남긴 글들을 보면 여성이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법흥왕 :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 방을 만들어 있게 했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 2018. 3. 23.
자장(慈藏) 신라 중기 때 고승. 김씨(金氏). 아버지는 소판을 지낸 무림(茂林)이다. 인평(仁平) 3년(636), 왕명에 따라 제자 10여 명을 데리고 당(唐)에 들어가 청량산(淸凉山)에서 수도했다. 선덕왕 12년(643) 귀국하고, 2년 뒤인 동왕 14년(645)에 창건한 황룡사탑 발원자다. 불학 중에서도 율학(律學)의 대가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5년(636)...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2018. 3. 23.
이차돈異次頓 22세, 혹은 26세이던 법흥왕 15년(528), 자신을 희생해서 이적(異跡)을 일으킴으로써 신라에 불교를 공인케 한 인물. 전자를 따르면 생몰년은 507(지증왕 8)~528년이며, 후자를 따르면 503(지증왕 4)~528년이 된다.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는 계보가 전하지만, 조부가 아진종(阿珍宗)이라는 다른 기록도 있다. 이처도(伊處道), 거차돈(居次頓), 혹은 박염촉(朴厭觸)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 2018. 3. 23.
연보(蓮寶) ☞련보(蓮寶) 2018. 3. 23.
화보(花寶) 생몰년 미상. 태종무열왕 때 재상을 지낸 김량도의 딸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또 다른 딸 련보(蓮寶)와 함께 절에 희사했다 한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공(法空) : 21년(534)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정사를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주초와 석감(石龕)과 섬돌을 발견하니 과연 그곳은 옛날 초제(招提)의 옛 터였다. 대들보감으로 쓸 재목은 다 이 숲에서 나왔다. 공사를 다 마치자 왕은 왕위를 사양하고 스님이 되어 이름을 법공이라고 고치고 삼의(三衣)와 와발만을 생각했다. 뜻과 행은 원대하고 고매하였으며, 일체 자비를 가졌다. 그리고 그 절 이름을 대왕흥륜사라고 했는데, 이는 대왕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것이 신라에서 절을 창건한 시초이다. 왕비도 또한 부처님을 받들어 비구니가 되어 ..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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