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51

붕어를 출판하고 국화를 인쇄하는 틀 난 붕어빵보다는 붕어빵을 찍는 틀을 먼저 본다. 저걸 주시하는 이유는 떡판 다식판이 진화한 형태인 까닭이다. 저걸로 모양을 내는데 그래서 같은 종류의 빵을 틀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무한히 찍어낸다. 이 찍어냄이 바로 인쇄印刷다. 그러니 빵을 찍어내는 행위는 출판이다. 국화빵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역시 국화를 인쇄하며 출판한다. 인쇄도 출판도 이젠 영역을 확대할 때다. 2024. 2. 27.
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나로 하여금 오래 앉게끔 使我久坐 추사가 남긴 그 숱한 필적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씨다. 칠십이구초당이라 했으니 북청으로 귀양가기 직전 만년 글씨인데, 그 뜻도 뜻이거니와 글자 구성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그야말로 현판으로 만들어 창 위에 걸고 싶은 글귀다. *** related article *** 제주추사관-小窓多明 제주추사관-小窓多明2021.06.17.(목) / 제주추사관 소창다명사아구좌 小窓多明使我久坐 작은 창문에 많은 광명의 빛이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앉아 있게 한다. 제주추사관은 생각을 좀 더 정리한 다음 포스팅하도록 하historylibrary.net 2024. 2. 27.
거란의 수도 방위군 앞서 거란군 수도 방위 시스템을 논급했으니 이는 그 시스템을 간단히 도해화한 것이다. 오행五行에서 비롯하는 오방五方에 기초해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다 호위군을 배치했다. 이 호위군을 피실皮室이라 했으니 황제를 보호하는 피부막과 같은 조직 군대라는 뜻이다. 左피실은 곧 東피실이며 右피실은 곧 西피실이다. 가운데 黃피실이 내 추정에 의하면 아마도 천운군天雲軍이라 별칭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와는 별도로 움직이는 기무사령부였을 것이다. 그런 증언이 없지만 틀림없이 저들은 각기 오방색을 따라 깃발이나 군복 색깔을 달리했을 것이다. 곧 계절로는 봄 기운 싹트는 해 뜨는 동쪽 좌피실은 청색, 남방 자오선 태양이 지나는 여름의 남쪽 남피실은 이글거리는 태양색깔인 주색, 해가 지는 서쪽 우피실은 가을에.. 2024. 2. 26.
복원 전의 불국사 복원 전 불국사 사진을 보면 아무리 봐도 원래 신라 때 원래 모습은 일본의 뵤도인平等院[평등원]의 원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ditor's Note *** 불국사 담장 앞마당에는 본래 연지라 해서 연못이 있었다. 이는 창건 당시에 이미 그러했고 70년대 발굴조사에서도 흔적은 확인했다. 다만 전면조사를 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물론 현재도 연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근대에 새로 만든 것이다. 2024. 2. 26.
아동 열명을 통역사 전문 양성요원으로 거란에 보낸 고려 인지언어학에서는 brain localization 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습득을 관장하는 뇌 어느 부분은 13세 정도가 되면 언어습득이 끝난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려면 열세살 이전에 시작해야 한다. 뭐 그 비스무리한 걸로 기억하는데 꼭 저와 같은 거창한 개념 빌리지 않아도 이건 생득으로 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외국어 전문통역관을 통하게 해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해서 통사通事라 하고 저런 이름을 붙인 중국어 학습교재 박통사朴通事가 있다. 이 전문교육 기관을 사역원司譯院이라 하는데 번역 통역을 맡은 기관이란 뜻이다. 조선후기인가 그 자리는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데다. 이곳에서도 대개 아동들을 조기교육하고 심지어는 조기유학을 보내기도 했으니 고려 성종 때인가? 감찬이 형이랑 배압이 형이 사생결단 한 판 .. 2024. 2. 26.
용인의 여흥민씨(驪興閔氏) 여흥민씨의 묘역이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지명, ‘민재궁(閔梓宮)’ 용인에 많은 세거성씨가 있지만,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씨 중에 여흥민씨(驪興閔氏)를 손에 꼽을 수 있다. 용인의 민씨 세거지로는 처인구 유림동, 마평동, 포곡읍 신원리, 기흥구 공세동 등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데는 기흥구 상하동으로 추정된다. 상하동에 ‘민재궁(閔梓宮)[민자궁, 민제궁]’이란 지명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는 여흥민씨와 관련이 있다. ‘재궁(梓宮)’이란 시신을 안치할 때 쓰는 관을 의미한다. 즉, 민재궁이란 지명은 이 일대에 여흥민씨 가문 사람들의 묘가 조성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런데 민재궁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 여흥민씨가 아니라 풍창부부인 조씨(豊昌府夫人 趙氏, 1659~1741)의 묘소가 언급되곤 하는데,.. 2024. 2. 2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