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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이 매집했다는 안중근 유묵 퇴근시간이 지난 오후 8시. 드디어 소식이 들려왔다. 낙찰이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현장에서 낙찰자가 밝혀졌다. 언제나처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음에도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더랬다. 설 전부터 예고된 안중근 유묵 (사람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네)의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미공개 유묵이라며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기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길 수 있는가)가 한국 서예 작품 최고가(19억5천만 원)로 거래된 이래 불과 두 달 만에 다른 미공개 유묵이 거래된 것이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바이지만, 실은 작년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초 교토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있었다. 그 안에는 일찌기 공개된 적이 없는 유묵 석 점의 사진과 연락처가 적힌 얇은.. 2024. 2. 27.
사진으로 보는 부여 관북리유적 칠피갑옷 백제의 '마지막' 흔적일까…부여 관북리 유적서 옻칠 갑옷 확인 송고시간 2024-02-27 10:05 공주 공산성 이어 두 번째…등자·말 뼈 나와 일부는 말 갑옷 추정 폐기된 유물·불에 탄 흔적도 발견…"백제 멸망 당시 혼란한 상황 유추" https://www.yna.co.kr/view/AKR202402270496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백제의 '마지막' 흔적일까…부여 관북리 유적서 옻칠 갑옷 확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 왕궁터로 거론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옻칠한 갑옷의 흔적이 확인됐다.... www.yna.co.kr 이 발굴소식은 앞 소식으로 일단 가늠하기로 하고 이에서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배포한.. 2024. 2. 27.
쇠말뚝과 싸우던 시절의 회고 쇠말뚝이 일재잔재랑은 눈꼽만큼도 관계없다는 사자후를 내가 토해낸 때가 2005년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저와 같은 주장을 담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의왕의 旺자도 日王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는 주장을 쏟아낸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의왕은 義旺이라는 이름이 일재잔재라며 그 한자표기를 義王으로 바꾸는 희대의 코미디가 결국은 벌어지고 말았다. 천황봉이 일제잔재가 아니란 것도 그때 사자후를 쏟아냈다. 주산 중에서도 천황天皇이라는 이름을 지닌 것이 있으니, 이것이 일제잔재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한테서는 일본 천황에서 유래한다 해서 천왕天王으로 바꾸거나 하는 일이 빈발했으니, 천황은 일본 천황이기 이전에 북극성을 지칭하는 별칭 중 하나임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물.. 2024. 2. 27.
지리산 쇠말뚝의 난동[2005] 정다산 묘에서 철심이 발견된 데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그것을 가능케 한 밑도 끝도 없는 일제에의 저주를 ‘저주’한 블로그 글을 내가 올린 것이 불과 두 달 전인 2005년 4월30일이었다. 철심만 발견되기만 하면, 쇠말뚝만 발견되기만 하면 우리는 자동 빵으로 그것이 일제의 소행이라 하며, 그런 짓거리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철심은, 그러니 쇠말뚝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수 민족혼의 저 고향을 상정케 하는 절대 도덕률이며, 우리가 그것을 뽑아냄으로써 우리의 민족혼을 되살린다는 정언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제1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일이 며칠 전 지리산에서도 발생했다. 2005년 6월 26일자 우리 연합뉴스 경남 산청발로 보도된 기사는 이렇다. 한배달 민족정기선양.. 2024. 2. 27.
기분 잡친 정약용 묘 쇠말뚝[2005] 내가 쇠말뚝이 일제와 하등 관계가 없음을 설파한 글을 올린 것이 (2005) 4월 28일. 그러다가 경기 남양주발로 정약용 묘에서 쇠말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어제, 그러니까 4월 30일. 그 소식 마지막 구절에 보니 남양주 市 관계자 말을 인용한 “일제의 정기 말살 의도” 운운한 언급이 보이기에 회사 내부 게시판에 “쇠말뚝과 일제는 하등 무관계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 글은 이내 130여 조회수를 기록한 시점에서 내려버렸으니, 그 까닭은 혹여 이 글로 인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동료기자를 비판한 것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지 않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한데 돌아가는 꼬락서니는 보아하건대 내가 예고했던 대로 이 쇠말뚝은 무속인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가 언제인가 이 쇠말뚝.. 2024. 2. 27.
임진년에 쇠말뚝을 꽂은 명나라 술사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八道總論) 중 경상도 중 선산(善山) 조 기술이다. (상주) 남쪽에 있는 선산은 산천이 상주보다 더욱 깨끗하고 밝다. 전해 오는 말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에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예부터 문학하는 선비가 많았다. [南則善山, 山川比尙, 尤淸名穎秀, 故諺曰, 朝鮮人才半, 在嶺南, 嶺南人才半, 在一善, 故舊多文學之士] 임진년에 명나라 군사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명나라 술사術士가 외국에 인재가 많음을 꺼리어 군사를 시켜 고을 뒤 산맥을 끊고 숯불을 피워 뜸질을 하게 했다. 또 큰 쇠못을 박아 땅의 정기를 눌렀는데, 그 뒤로는 인재가 나지 않는다. [壬辰, 天兵之過此也. 術士忌外國多人才, 使兵卒斷邑後脈, 熾炭灸之, 又揷大鐵釘壓住, 而自是人才衰..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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