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688 [독설고고학] 고분 vs. 무덤 이쪽 업계에 몸담다 보면 실로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 용어조차 한 발짝 물러서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말 천지라 고분古墳이라는 말도 그렇다. 이 말 대뜸 알아듣는 이 몇명 안 된다는 심각성을 더는 방치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마뜩한 한국어가 없다면 모를까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만한 말이 있음에도 관성과 타성에 젖어 무덤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굳이 고분이라는 말을 쓰야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구상에 완전히 같은 말은 없다. 그런 점에서 고분과 무덤이 같을 수는 없다. 고분은 글자 그대로는 무덤 중에서도 오래된 것을 지칭하니 더더구나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신라 무덤이라 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음에도 굳이 일본사람 찌꺼기 흉내내어 신라 고분이라 하는 것도 문제라 신라시대 무덤은 누가 봐도 오래된 무덤이지 글타면 신.. 2024. 1. 17. [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3) 모든 혼란을 해결한 화랑세기와 상장돈장 앞서 제시한 화랑세기와 상장돈장 계보는 지증의 두 아버지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한다.첫째, 기보와 습보는 별개 인물이다.기보는 내물왕비 보반이 실성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이 점에서 유의할 점이 기보를 삼국유사에서 “눌지왕의 동생”이라 한 대목이다. 눌지왕의 동생이라 했지 결코 내물왕의 아들이라 하지 않았다. 눌지는 내물왕과 보반 부인 사이의 소생이다. 기보와는 어머니(보반)가 같은 형제다.“눌지왕의 동생”이라는 삼국유사 언급을 우리는 지금까지 아버지(내물)가 같은 인물로 간주했다.하지만 왜 삼국유사가 기보를 일러 “눌지왕의 동생”이라 굳이 했겠는가? 반면 습보는 내물왕과 보반 부인 사이에서 난 세 아들 중 복호의 아들이다. 복호가 성명聖明이라는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습보다. 둘째,.. 2024. 1. 17. 광개이목廣開耳目, 이찰만방以察萬方 전한前漢 말기 문사文士 유향劉向이 찬한 설원說苑 중 제1편 군도君道, 즉 임금이 가야할 길 첫 머리다. 진晉 평공平公이 사광師曠한테 물었다. “임금이 가야 할 길은 어떠오”. 대답하기를 “임금의 길은 맑고 깨끗이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힘쓰고 어진 사람을 발탁해 일을 맡기며, 귀와 눈은 널리 펴고서 만방을 살피되, 세속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측근들한테 휘둘리지 않아야 하며, 탁 가슴을 연 채 멀리 바라보면서 홀연히 서야 하고, 신하들이 한 일을 잘 살펴서 신하들에게 군림하는 일이니 이것이 바로 임금 노릇하는 요체입니다.” 평공이 말하기를 “옳습니다” 晉平公問於師曠曰:「人君之道如何?」對曰:「人君之道清淨無為,務在博愛,趨在任賢;廣開耳目,以察萬方;不固溺於流俗,不拘繫於左右;廓.. 2024. 1. 17. 로마·베를린, 쪽도 못쓰는 이태리 독일 프로축구 수도 승강제를 근간으로 하는 각국 프로축구에 영원한 강자는 있을 수는 없다. 각국 프로축구는 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니, 연고권이 있어 그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다. 유럽 프로축구의 경우 흔히 스페인 프미메라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아A, 그리고 프랑스 리그앙을 5대 1부 리그라 하거니와, 보통은 수도를 프랜차이즈 시티로 삼는 클럽이 해당 리그만 아니라 그들을 통합한 챔피언스리그도 독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무래도 돈과 사람이 수도 중심으로 몰리고 그런 까닭에 축구 또한 비즈니스라 수도권 중심으로 투자가 밀집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한데 특이하게도 독일과 이태리는 전통적으로 수도 기반 클럽이 맥을 추지 못한다. 독일은 이게 좀 묘해서 언제나 뮌헨 기반 바이에른 뮌헨이 절대.. 2024. 1. 17. 백제와 신라 동시대 무덤 모식 물론 시기를 확정해야 하니 왕릉급 기준으로 백제가 저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확실히 475년 웅진 천도 이후이며 망할 때까지 저 골간을 유지했다. 다시 말해 저 기간 동안 백제는 산 구릉에다 기본으로 묘광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다가 시신을 매장했다. 이 경우 산 혹은 구릉 자체가 봉분이라 봉분을 크게 만들지는 않아 높이라 해 봐야 일미터 남짓하다. 동시대 신라는 왕청 나게 달라 지증왕 때까지는 평야에 쓰다가 법흥왕 이후는 경주 분지를 탈출하면서 입지조건은 백제랑 비슷해져 구릉으로 이동한다. 다만 외곽으로 가기는 해도 일부는 여전히 평지를 고수하기도 한다. 문제는 본능. 신라는 결코 기슭으로 가도 우람한 봉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산더미만한 봉분을 쌓아 이곳이 무덤임을 표식했다. 동시대 가야는 조금 .. 2024. 1. 17.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2) 도로아미타불 될 뻔한 여불위 진秦 소왕昭王은 재위 50년에 왕기王齮라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삼아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다. 이에 다급해진 조나라에서는 진나라 인질로 한단에서 생활하던 자조子楚를 죽여 복수하고자 했다. 더 다급해진 쪽은 여불위였다. 공들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 그는 다시금 뇌물을 동원해서 조나라 관리들을 구워 삶아 겨우 자초를 탈출케 하고는 진나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자초나 그의 후견인 여불위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특히 여불위의 경우는 하마터면 개털될 뻔한 투자를 톡톡히 본전 뽑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단에 남은 자초의 처자식까지 안전을 보장케 하는 데 성공하고 자초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간 여불위는 마침내 자초를 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대목을 사기 여불위.. 2024. 1. 17. 이전 1 ··· 1619 1620 1621 1622 1623 1624 1625 ··· 394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