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유신기에 유신 정부군과 싸우던 막부세력이 최후로 항전한 곳이 북해도였다.
1867년, 막부가 이미 소멸했음에도 그 잔존 세력이 굴복하지 않고 홋카이도에 모여 결사항전했는데
이를 일본사에서는 '에조공화국蝦夷共和国'이라 부른다.
왜 '에조공화국'인가.
막부세력이 후퇴하여 북해도를 쳐들어가 현지 세력을 제압하고 이곳에 모여든것이 1868년.
이들은 선거를 통해 총독과 정부관료를 선출하고 유신 세력에 대한 저항을 천명했다 (1869년).
이들을 방문한 서구 6개국 특사들은 이들을 접견하고 이 '에조공화국'은 '사실상의 정권'이라고 천명했다.
이 사실상의 정권, authorities de facto 는 국가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사실상의 정권, 이라는 것은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아래라고 한다.
'교전단체'는 국가 안에 내전이 발생했을때 정부군의 반대편에 선 세력으로 이 세력이 '교전단체'로 인정받게 되면 사실상 이들 사이의 전투는 '반란의 진압'이 아니라 전시국제법의 규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에조공화국은 실제로 영토를 점유하고, 주민이 있었으며, 선거를 통해 정권을 수립했는데도, '교전단체'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의 정권'의 단계에 머물러야 했다.
에조공화국은 반년 정도 버티다가 쳐들어온 신정부군에 함락되어 종언을 고한다.
우리의 임시정부는 존속의 기한으로 보나 위상으로 보나 일제 전시기를 통해 가장 유력한 독립운동 단체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한때 이들보다 더 큰 군사적 세력으로 큰 집단도 있었지만 해방의 순간까지도 임시정부처럼 많은 명망가들이 몸담고 이의 존재를 의식한 집단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국제법상 '교전단체'였을까?
아니면 'authorities de facto 사실상의 정권'의 단계라도 공인받고 있었을까?
김구와 이승만이 해방의 순간까지도 원했던 것이 바로 '정부승인'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정부승인'까지는 언감생심, 이들이 원했던 것은 '교전단체'의 지위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 희망사항이었다고 해도 좋다.
만약 임시정부가 '정부'가 아니라 '교전단체'의 지위라도 획득했다면 해방 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인데-.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제외한 한국독립운동 단체 그 누구도 '사실상의 정권' 단계에도 도달한 집단은 없었다.
국가라는 것은 우리가 어느 시기부터 국가로 지금부터 삼겠다고 '선언'한다고 리트로스펙티브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은 이데올로기의 규정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들이 멋대로 생각나는 대로 규정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역사가들에게 그런 권능을 부여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상식선에서 해방전의 독립운동사도 바라보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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